시속 164㎞짜리 광속구를 뿌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화제를 불러 모은 쿠바 좌투수 아롤디스 차프만(22)이 제구력 난조로 고개를 떨궜다.

16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 펫코파크에서 열린 WBC 2라운드 일본과 첫 경기에 선발 등판한 차프만은 최고 160㎞짜리 볼을 던졌지만 2⅓이닝 동안 안타와 볼넷을 각각 3개씩 내주고 3실점을 허용해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50개를 던졌기에 나흘을 쉬어야 하는 WBC 규정에 따라 2라운드에서는 더 등판할 수도 없다.

두 차례나 견제로 1루 주자를 잡아내고 안정된 번트 수비도 펼쳤지만 가장 기본인 제구력이 뒷받침되지 못하면서 타격 정확성이 뛰어난 일본 타자들의 벽을 넘지 못했다.

특히 차프만은 볼카운트 2-0, 2-1의 절대 유리한 상황에서 볼넷과 안타를 2개씩 맞고 자멸했다.

강속구가 포수 미트에 펑펑 박히는 소리가 구장에 울려 퍼졌고 광속구가 전광판에 찍힐 때마다 팬들이 탄성을 내지르기도 했지만 볼과 스트라이크의 차이가 확연히 드러나면서 빠른 볼의 위력도 반감됐다.

193㎝의 큰 키에 몸무게가 81㎏에 불과해 호리호리한 체형인 차프만은 2007년 아마추어 최강을 가리는 야구월드컵 한국과 경기에서 7이닝 동안 삼진 9개를 뽑아냈고 일본과 4강전에서는 8이닝 동안 단 3안타만 맞고 삼진을 11개나 솎아내며 국제무대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지난해 12월에는 164㎞를 찍어 마엘스 로드리게스가 보유 중이던 쿠바 최고 강속구(161㎞) 기록을 갈아치우며 혜성처럼 등장했으나 제구력에 고질적인 문제를 드러내 쿠바 리그에서는 6승7패 평균자책점 3.89에 머물렀고 피안타율도 0.200에 달했다.

변화구 제구가 안 되니 빠른 볼만 집중적으로 노린 타자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메이저리그 스카우트 사이에서는 '빠른 볼을 던지는 좌투수는 지옥에 가서라도 잡아온다'는 속설이 있으나 투수의 기본은 속도보다 제구력에 있음이 차프만의 사례에서 확실해졌다.

(샌디에이고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