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운동선수들은 저마다 하나씩 ‘별명’을 갖고 있다. ‘무등산 폭격기’로 불렸던 선동렬 삼성 라이온스 감독이 그렇고 ‘차붐’으로 통했던 차범근 수원 삼성감독도 그랬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 참가 중인 프로야구 선수들도 마찬가지다. 팬들이 붙여 준 ‘별명’에는 그 선수의 특징과 이력이 간결하게 압축돼 있다. “별명을 알면 선수가 보인다.” WBC를 재미있게 즐기기 위한 조그만 사전지식이다.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1라운드 일본전에서 무실점 쾌투를 한 봉중근의 별명은 한때 ‘봉미미’였다.

2007년 미국 마이너리그에서 삼성 라이온즈로 온 투수 브라이언 메존은 인터뷰 도중 ‘메이저리거였던 봉중근을 아느냐’는 질문에 “그런 '미미'한 선수는 모른다”고 대답했다. 게다가 봉중근의 팀내 기여도도 팬들의 기대에 못 미치면서 한동안 '봉미미'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이 봉중근에게 붙어 다녔다.

그러나 작년부터 제실력을 발휘하면서 별명이 ‘봉타나’로 바뀌었다. 메이저리그 현역 최고의 좌완투수로 꼽히는 뉴욕 메츠의 ‘요한 산타나’를 연상케 한다는 칭찬이다.

이번 WBC에서 주가가 급상승한 김태균은 별명이 ‘김별명’이다. 두터운 팬을 확보한 선수답게 자그마한 해프닝만 있어도 곧바로 별명이 됐기 때문이다.

앞 타자가 타점 기회를 다 빼앗아가는 바람에 “난 늘 거지”라고 한 마디 했다가 바로 ‘김거지’라는 별명이 붙었고 동료들과 염색하러 미장원에 갔다가 생각을 바꿔 머리털만 잘랐다는 인터뷰가 나가자 ‘김배신’이라는 애칭이 생겼다.

지난해 베이징올림픽 국가대표에 뽑히지 못했을 때 “나보다는 친구인 이대호가 국가대표로 뽑히는 게 맞다”는 발언이 보도되자 ‘김탈락, 김친구, 김양보, 김의리, 김우정, 김믿음’ 등의 별명이 줄줄이 양산됐다.

커뮤니티사이트인 디시인사이드 야구갤러리에서는 김태균 별명짓기가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를 잡을 정도였다.

WBC 대표팀 2루수인 고영민은 ‘고제트’ 또는 ‘2익수’로 불린다. 모두 수비범위가 넓다는 칭찬의 뜻을 담고 있다. ‘고제트’는 만화 ‘가제트 형사’에서 따왔다.

‘만능팔’을 외치면 팔이 쭉쭉 길어지는 가제트 형사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는 뜻이다. ‘2익수’는 ‘2루수 + 우익수’의 줄임말이다. 하도 수비범위가 넓어 우익수 자리에 떨어지는 공까지 척척 걷어낸다는 의미다.

한국 야구대표팀 유일의 메이저리거인 추신수는 ‘추추 트레인(Choo Choo Train)’으로 불린다. ‘추추(Choo Choo)’는 기차가 내뿜는 기적 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다.

우리말로 치면 ‘칙칙폭폭’에 해당한다. 추신수의 거침없는 플레이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힘차게 달리는 기차와 닮았다는 얘기다.

이번 WBC 중국전에서 활약한 이범호는 ‘꽃범호’로 불린다. 우락부락 남자답게 생긴 외모를 역설적(?)으로 표현한 별명이다. 프로야구계의 유일한 ‘꽃남’인 셈이다.

한때 케이블TV 한 곳에서 이범호 선수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배경화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화사한 꽃들로 채워 네티즌들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유격수를 맡고 있는 박기혁은 마른 몸매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뼈기혁’이라는 별칭으로 통한다. 팔다리가 가는데다 옆으로 재빠르게 움직이는 수비 동작 때문에 ‘꽃게’ 라는 별명으로도 불린다.

대만과의 WBC 첫 경기에서 만루홈런을 뽑아낸 이진영은 ‘국민 우익수’로 불린다. 2006년 1회 WBC 아시아 예선 일본전에서 우익선상으로 빠지는 총알같은 타구를 그림처럼 잡아낸 이후 붙여진 별칭이다.

한경닷컴 안재석 기자 yag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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