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못해서 그렇지...일본전 스트레스가 얼마나 큰 줄 알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아시아라운드에서 1위를 차지하고 미국 애리조나 캠프에 도착한 김인식(62) 한국야구대표팀 감독이 심한 감기에 시달리고 있다.

11일(이하 한국시간) 선수단 숙소인 미국 피닉스 인근 위웜골프리조트에서 기자들과 티타임을 가진 김인식 감독은 코가 막힌 목소리로 "그제 일본전이 끝나고 나니 긴장이 확 풀리더라구. 비행기 타고 오는데 찬바람이 많이 나와 그만 감기에 걸렸어. 한국같으면 병원가서 주사라도 맞을 텐데..."라고 말했다.

동석한 김성한 수석코치는 "사실 일본전에 대한 부담이 너무 컸다.

첫 경기에서 콜드게임 당하고 난 뒤 정말 창피해서 말도 못하고...감독님이 스트레스에 무지 시달렸다"고 덧붙였다.

일본은 10여년 전만 해도 야구 수준이 한국보다 한 수 위라고 인정했던 나라였다.

1935년 일찌감치 프로팀이 탄생한 일본은 1990년대 세차례의 한일슈퍼게임을 치를 당시만 해도 한국은 배운다는 자세였다.

그러나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6년 제1회 WBC, 지난 해 베이징올림픽을 거치면서 한국이 6승1패로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자 사정이 확연히 달라졌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일본 언론들은 `타도 한국'이라고 공공연히 선언했고 하라 다쓰노리 감독은 "도전한다는 자세로 나서겠다"며 자존심까지 숙이고 철저한 경계심을 드러냈다.

일본이 이처럼 총력 태세로 나오자 한국 역시 큰 부담을 갖지 않을 수 없는 대결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첫 경기에서 2-14로 충격적인 콜드게임패를 당해 국내 야구팬들을 크게 실망시켰다.

경기 뒤 김인식 감독은 "10점차로 지던, 1점차로 지던 1패일 뿐"이라고 애써 담담하게 소감을 피력했지만 속내는 무지 쓰라렸던 것이다.

한국 입장에서 최소한 명예회복을 해야하는 1-2위 결정전에서 양국은 간판투수들을 총동원해 사실상 `야구전쟁'을 치렀다.

두 팀 모두 2라운드 진출 티켓을 확보한 상태여서 무리할 필요는 없었지만 상대에게 만큼은 절대 질 수 없다는 자존심 대결이었다.

김성한 수석코치는 "피말렸던 경기가 1-0으로 끝나자 김감독님이 눈물마저 글썽였다"고 전했다.

콜드게임의 수모를 완봉승으로 되갚아준 김인식 감독은 "이번 대회 출전국 중 투수력만 보더라도 아마 일본이 가장 센 팀일 것"이라고 평가한 뒤 "일본과는 또 붙어야 하지만 양국이 라이벌 경기를 펼치면서 야구 수준은 점점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WBC 주최측의 괴상한 대진방식으로 인해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결승전에 오른다면 최대 5번까지 경기를 치를 수 도 있다.

두 나라 야구팬들이 첨예한 라이벌 경기에 뜨거운 관심을 보이는 만큼 코칭스태프는 더욱 지독한 스트레스에 시달릴 전망이다.

(피닉스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shoel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