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도면 새로운 `스타 탄생'이다.

그저 원포인트릴리프 중의 한명으로 여겨졌던 정현욱(31.삼성)이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한국 마운드의 새로운 기둥투수로 거듭났다.

프로경력이 벌써 12년차인 정현욱이 이번 대회처럼 조명을 받은 일은 없었다.

동대문상고를 졸업하고 1998년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했던 정현욱은 1군 마운드에서 주로 중간계투로 활동하다 2004년 말 당시 프로야구에 상당한 파문을 일으켰던 병역비리에 연루된 2년간 군복무를 해야 한다.

한창 나이에 그라운드에서 사라졌으니 그의 야구 인생도 어설프게 끝나는 듯 보였으나 병역의무를 마친 정현욱은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었다.

2007년 복귀 첫 해 불과 11경기에서 14⅔이닝을 던지는데 그쳤던 정현욱은 지난 시즌 무너진 삼성 마운드에서 무려 53경기에 등판해 10승4패11홀드와 방어율 3.40을 기록하며 중심 역할을 했다.

불펜투수지만 위급한 상황마다 마운드에 올라 선발투수에 맞먹는 127이닝을 던지다 보니 `정노예'라는 별명마저 붙었다.

사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도 큰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오키나와 전지훈련 도중 삼성 소속선수 3명을 대표팀으로 파견했던 선동열 삼성 감독조차 대표팀 단골멤버인 오승환과 박진만의 어깨를 두드리며 격려한 뒤 생애 첫 태극마크를 달게 된 정현욱에게는 "최종 엔트리에서 탈락할 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해라"고 당부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정현욱에 적지않은 신뢰를 보냈고 정현욱은 기대를 능가하는 호투를 펼쳤다.

일본과 첫 경기에서 믿었던 김광현(SK)이 불과 1⅓이닝동안 8실점한 상황에서 구원등판한 정현욱은 주눅들 법도 했지만 4타자를 깔끔하게 처리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정현욱의 진가는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1-0 완봉승을 거둔 1-2위 결정전에서 더욱 빛났다.

1-0으로 앞선 6회말 1사 뒤 봉중근(LG)으로부터 공을 넘겨 받은 정현욱은 시속 150㎞를 넘나드는 강력하고도 묵직한 직구를 앞세워 힘으로 일본 타선을 농락했다.

1점차의 불안한 리드가 엄청난 부담되는 상황이었으나 정현욱은 1⅔이닝동안 삼진 3개를 솎아내며 1안타 무실점으로 일본 타선을 압도했다.

특히 7회 대타로 나온 요미우리의 강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를 삼구 삼진으로 돌려세운 장면은 양팀 벤치에 미치는 파급효과도 엄청났다.

서른이 넘은 나이에 국제대회를 통해 깜짝 스타로 발돋움한 정현욱은 2라운드를 앞두고 그의 호투 여부가 한국팀 성적에 직결될 만큼 중요한 핵심투수로 거듭나고 있다.

(피닉스연합뉴스) 천병혁 기자 shoel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