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만큼 성숙해진 것일까.

깊은 슬럼프에 빠졌던 위성미(20.나이키골프. 미국 이름 미셸 위)가 화려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15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주 카후쿠 터틀베이리조트골프장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SBS오픈에서 위성미는 역전패를 당해 우승 기회를 날렸지만 준우승이라는 값진 성과를 거뒀다.

한때 1천만달러라는 거액의 후원 계약을 이끌어내며 각광을 받았지만 2005년 프로 데뷔 이후 위성미는 끝없이 추락했다.

대회에서 나갔다하면 컷오프, 실격, 기권을 일삼았다.

그러면서 남자 대회 출전을 고집해 안티팬까지 생겼다.

그랬던 위성미는 이번 대회에서 확 달라졌다.

대회장에서 만난 이제 더 이상 철부지 소녀가 아니었다.

6년 전 14살 때 2003년 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챔피언조에서 경기를 펼치며 본격적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린 이후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은 위성미는 연습장에서도 언제나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올해 위성미는 드라이빙 레인지에서 샷을 점검하거나 퍼팅 그린에서 연습할 때도 과거와 달리 여유가 넘쳤다.

특히 여러 선수들이 섞여서 연습하는 퍼팅 그린에서는 동료 선수들과 농담을 주고 받느라 연습도 건성으로 한다는 인상을 줬다.

주변의 기대에 대한 과도한 부담감 탓인지 비장한 표정으로 경기를 치르던 위성미는 온데 간데 없었다.

마음의 여유 뿐 아니었다.

위성미는 "내가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른이 됐다는 뜻이다.

위성미의 경기 스타일도 전과 너무나 달라졌다.

전에는 힘으로 밀어붙였다면 이번에는 코스에 순응하고 바람을 이용하는 영리한 플레이가 돋보였다.

위성미의 장기는 폭발적인 드라이버샷이었다.

1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도 30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가 트레이드마크였고 팬들도 장타에 환호했다.

이번 대회에서 위성미는 평균 드라이브샷 비거리가 260야드에도 미치지 못한 251야드에 그쳤다.

드라이버로 티샷을 날린 것은 3라운드 54홀을 치르는 동안 10번도 채 안됐다.

대신 3번 우드를 애용했다.

페어웨이 안착률이 66.7%나 됐다.

라운드마다 페어웨이를 벗어난 것이 서너차례에 그쳤다.

자연스럽게 그린 적중률도 상승했다.

사흘 동안 그린 적중률은 66.7%였다.

이는 지난 시즌 기준으로 25위에 해당하는 것이다.

시속 40㎞ 넘는 강풍이 부는 가운데 이런 그린 적중률은 위성미에겐 놀라운 수치이다.

최종 라운드 2번홀(파4)은 오르막인데다 맞바람이 불어 티샷을 길게 치고 싶은 욕심이 나는 곳이다.

그런데도 위성미는 3번 우드를 빼들었다.

두번째샷을 우드나 롱아이언으로 치더라도 거리 욕심보다는 안전한 방법을 생각한 것이다.

위험을 철저하게 피해가는 조심스러운 코스 공략은 지나치게 신중하다는 평까지 받았다.

1라운드 때 11번홀(파4)에서는 티샷이 빗나가자 주저없이 페어웨이로 볼을 꺼내는 레이업을 선택했다.

잘하면 그린을 직접 공략할 수 있었지만 그린 오른쪽에 연못이 버티고 있고 왼쪽은 나뭇가지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더 달라진 것은 위성미의 정신력이었다.

전에는 위기가 찾아오면 일찌감치 무너졌다.

특히 그린에서 1∼3m 짜리 파퍼트 실패는 위성미의 '특징'이었다.

프로 선수들의 퍼팅 실력은 기술적인 문제보다 정신력에서 갈린다는 점에서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위성미의 놀라운 그린 플레이는 강해진 정신력 덕이라는 해석이다.

라운드 당 26.7개꼴에 그쳤던 위성미의 퍼팅은 정상급 선수로 손색이 없었다.

전체 퍼팅 개수는 나탈리 걸비스(미국)와 함께 공동1위였다.

우승자 안젤라 스탠퍼드(미국)보다도 하루 평균 2개가 적었다.

스탠퍼드와 맞대결을 펼친 최종 라운드에서 위성미는 2번(파4), 5번(파4), 6번(파4), 7번홀(파4)에서 2m 안팎의 부담스러운 파퍼트를 모조리 넣었다.

역전패의 빌미가 됐던 11번홀(파4) 더블보기도 사실 트리플보기가 우려됐지만 그마나 2타를 잃는 것으로 막아냈다.

그린 적중시 퍼트는 1.69개꼴로 이번 대회에서 으뜸이었다.

스스로도 "꼭 넣어야 하는 퍼트는 거의 실수가 없었다"고 자평하고 만족감을 표시했다.

결국 마지막 고비를 넘지는 못했지만 연약하기만 했던 위성미가 아니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년 동안 이어진 아픔을 이겨내자 영리해졌을 뿐 아니라 강인한 승부 근성까지 엿보였다는 게 이번 대회를 지켜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골프다이제스트 칼럼니스트 론 시락 씨는 "실수라곤 11번홀 티샷 한번 뿐이었다.

빼어난 플레이였고 이제 우승하는 일만 남았다"고 칭찬했다.

우승을 다툰 스탠퍼드도 "정말 볼을 잘 다룬다.

오늘 값진 경험까지 더해졌으니 더 좋아질 것"이라고 위성미의 장래를 밝게 내다봤다.

(카후쿠<미국 하와이주>연합뉴스) 권 훈 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