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안정되면 여행수요 폭발 글로벌 홀세일 경영기관 구축 인바운드 비즈니스 대폭 강화할 것"


여행업계의 2008년은 '악재의 쓰나미'가 몰아친 한 해였다.

전 세계적 금융위기에 따른 환율과 유가의 고공행진이 일년 내내 짙은 먹구름을 드리웠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 급락에서 비롯된 개인의 자산가치 하락은 가뜩이나 위축된 여행심리를 더욱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이제 좀 숨통이 트이나 싶으면 여지없이 큰 사고가 불거져 좁아진 길을 꽉 틀어막았다. 중국 쓰촨성 대지진과 베이징 올림픽,그리고 공항 점거로 이어진 태국의 반정부 시위라는 뜻밖의 암초가 돌출했다.

설상가상이요,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여행사들은 속수무책으로,일단 간판을 유지한 채 버티는 수밖에 달리 손쓸 방도를 찾지 못했다. 여행사마다 연봉 삭감이 뒤따랐고 감원으로 흘린 눈물줄기가 굵어졌다. 아예 사업을 접은 여행사도 속출했다. 딱 하나,국내 여행사의 대표주자인 하나투어만은 예외였다.

하나투어는 미래를 대비한 인력 재편 외에 감원이나 연봉 삭감 카드를 꺼내지 않았다. '맨파워'를 유지하며 고통을 참고 견디면 곧 일어서리라는 전래 비결(秘訣)의 신통력에 대한 확신이 있어서였다. 권희석 하나투어 대표이사 사장은 "고통은 혼자 오지 않고,항상 희망과 행복을 잉태하고 있다.

그 희망과 행복은 인내하고 준비한 자의 몫이 될 것"이란 말로 지난해 하나투어의 행보를 요약했다. 권 사장은 이어 "영웅은 전장에서 탄생하고,큰 기업은 위기에서 나온다"고 강조하며 2009 기축년의 각오를 다졌다.


▶아웃바운드 여행사들이 죽겠다고 난리다.

"IMF 때는 외환위기에 국한됐다. 지금은 세계경제가 전체적으로 안좋은 상황이다. 한국은 환율난까지 겹쳐 그 수렁이 깊다. 여행업계 전체적으로 타격이 크다. 하나투어는 지난해 매출(1720억원)과 영업이익(90억원)이 전년 대비 각각 86.9%와 25%에 머물렀다. "


▶인력 감축 등으로 업계 분위기가 흉흉했다.

"하나투어는 인력 재배치 이외의 다른 수단을 동원하지 않았다. 어렵더라도 직원 월급은 줄이지 않을 생각이다. 한 달에 10억원씩 적자가 나더라도 월급은 제대로 주고 갈 생각이다. 옛날 IMF 때는 인건비를 줄여서라도 우선 살아남아야 한다는 구도였다. 지금 모든 여행사가 그렇게 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번 기회에 사기를 올려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무슨 프로젝트 투자 실패로 없어지는 게 아니지 않나. 결국 직원 복지나 그런 쪽에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어도 감내한다는 것이다. 그게 '하나투어 웨이'(하나투어 방식)다. "

하나투어는 1998년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다.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1997년 12월의 자금 사정은 한 달도 채 못버틸 상황이었다. 그러나 180명이던 직원을 하나도 자르지 않았다. 대신 매달 5000만원으로 6개월만 버티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제시했다. 일단 1인당 30만원만 받기로 하고 버는 만큼 공평하게 나눠갖자는 계산이었다. 6개월만 버티면 여행 수요가 되살아날 것이란 예측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끝까지 함께 한 인력을 기반으로 이후 10년 연속 업계 1위의 전설을 만들었다.


▶보통의 기업 입장에서는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나투어 웨이는 늘 보다 나은 미래를 마중하는 기반이었다. 투명 경영을 한다고 하니 여행사가 무슨 투명 경영이냐며 웃기도 했다. 그러나 투명 경영에 대해서는 국세청도 하나투어식으로 하라며 홍보한다. 거래처에 대해서도 현금 결제가 원칙이다. 어음을 써본 적이 없다. 거래처는 하나투어와 한 몸이란 개념이다. 랜드사는 물론 팸플릿 인쇄소까지 파트너다. 늘 서로 의논하며 윈윈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데이터 경영도 그렇다. 각 부서의 급여 대비 생산성을 따져 서로가 끊임없이 생산성과 인력 운용을 고민하게 한다. 연공서열 기업문화는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생산성에 상관없이 봉급을 올려주고 시절이 좋다고 인상을 약속하는 구조라면 불경기에 칼로 무자르듯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그건 무책임한 경영이고 종업원과 경영자 간의 불신을 만들어내는 뿌리다. "

인력풀제를 새로 도입한 것도 하나투어 웨이의 한 줄기이다. 권 사장은 경쟁 직군인 '종합직'을 30%,성실하게 일반 업무를 처리하면 되는 직군을 60%,단순한 서포트 기능을 하는 협력직을 10%로 가져간다는 구상이다. 업무를 난이도에 따라 나누고 서로 이동할 수 있게 했다. 처음부터 직무내용을 알 수 있게 하며,한 번에 2년 이상 근무토록 한다는 것이다.


▶올해 사업계획이 공격적이다.

"올해 경영목표를 수탁액 1조4000억원,매출액 2178억원,영업이익 217억원 달성으로 정했다. 지난해 대비 수탁액은 16.6%,매출액은 26.6%,영업이익은 141.1% 늘려 잡았다. "


▶여행 수요가 그만큼 늘어날까.

"적확한 비유일지 모르겠는데,요즘 경제상황은 고스톱판에서 어음을 쓰다가 그 어음이 부도나자 현찰만 돌리겠다는 현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결국에 가서 그 어음이 문제없다고 한다면 다시 판을 키우는 게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 아니겠나. 심한 경우에는 이제부터 시작이고 2~3년은 더 갈 것이란 전망도 하는데 각국이 파이를 키우는 쪽으로 노력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전망대로 나빠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은 먹고 자는 것처럼 일상의 일부분으로 누구에게나 중요한 것이다. 경제의 불확실성만 제거된다면 다시 여행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

권 사장은 환율의 불안정성 제거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그는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 거시경제실장의 환율 예측을 신뢰한다. "권 실장은 올 중반 환율을 1040원대로 전망했어요. 자기 계산으로는 1004원인데 보수적으로 잡았다는 거예요. 그때 쯤이면 여행 수요에 대한 갈증이 해갈되지 않겠어요. 올 사업계획은 이런 전망을 근거로 짰습니다. 6월까지는 이븐포인트 경영을 하고,7월 이후 하반기에는 재작년의 90% 이상 성과를 낼 것입니다. "


▶올해 특히 강조하는 경영전략은.

"새로운 미래를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다. 글로벌 홀세일 경영과 인바운드,국내 여행 비즈니스 강화에 힘을 쏟을 작정이다. 하나투어USA가 글로벌 홀세일 경영의 주축이다. 하나투어USA를 4~5년 내 100만명 송출회사로 키운다는 것이다. 미국 내 아시아지역 여행 수요는 상당한데 상품은 변변한 게 없다. 한국 중국 일본 그리고 이들 세 나라를 따로 또 같이 엮은 제대로 된 상품을 내놓으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 한국계 사장이 운영하는 483개 현지 여행사의 호응도 굉장하다. 상품 팔아 수수료 수입을 올리고,참여 지분에 따른 배당 수입도 기대할 수 있어서다.
한국 내에서의 바잉 파워하고 미국 내 바잉 파워로 전 세계 호텔 등 관광업체와 딜을 하면 상품가격을 크게 낮출 수도 있다. 하와이에 있는 유명 호텔이 한 층 18개의 객실을 다 쓰라고 제의해 온 것처럼 우리가 '프로퍼티'를 안 갖고 있어도 갖고 있는 것과 같은 마케팅 파워를 발휘할 수 있다. 이 모델을 유럽과 남태평양 등 다른 지역으로 확대해 글로벌 여행 기업으로서의 안정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 "


▶하나투어는 사실 인바운드가 약하다.

"인바운드 쪽은 많이 투자를 못한 게 사실이다. 인바운드는 워낙 덤핑시장이고,제살깎이고… 이런 시장에서는 투자해야 효과가 안나온다. 이제는 인바운드 비중을 높일 생각이다. 하나투어USA의 미국 내 홀세일 비즈니스도 인바운드 시장 육성 전략과 맞물려 있다. 일본 중국 현지법인의 아웃바운드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로 인바운드에서의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


▶여행사 상품의 질과 서비스가 비슷하다.

"하나투어는 분명히 다르다. 현지 직영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지 않은가. 대개의 여행사는 현지 행사를 아웃소싱한다. 랜드사들이 이익을 내야 하니까 쇼핑을 강요하는 등 장사에 유리한 쪽으로 할 수밖에 없다. 하나투어는 하나투어가 원하는 일정에 중점을 두고 케어하는 쪽이다. 물론 장소는 누구나 카피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장소에서의 시간 배정은 차이가 많이 난다. 에펠탑 관광을 예로 들어보자.대개는 에펠탑에 가 사진 몇 컷 찍고 10분이면 끝난다. 우리는 한 시간 두 시간씩 자유로이 구경할 수 있게 스테이시킨다. 일정은 비슷하지만 그 내용은 다르다. 소비자는 그걸 안다. 그래서 하나투어를 이용해본 사람은 또 예약한다. 하나투어는 상품이 좋다는 입소문으로 성장한 것이다. "


▶항공권 발권수수료가 없어지는데.

"하나투어는 상관없다. 지금도 항공권 판매로는 수익이 안난다. 업계 전체적으로는 30% 이상 타격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항공컴'을 없애는 게 좋은지 짚어봐야 한다. 외국에서 항공사들이 항공컴을 없앤 뒤 좋아졌나. 아니다. 항공사로 직접 들어오는 예약 수요만으로는 어렵다. 구간이 복잡할수록 서비스해주는 여행사가 필요하다. 여행사는 '서비스의 보험' 같은 것이다. 중소 여행사 사장들은 최고경영자 과정이다 휴일 등산이다 하며 인맥관리를 통한 여행 수요를 만들어내는 데 열심이다. 수수료가 안나오면 왜 그렇게 하겠는가. 항공사는 여행사를 케어해야 하고 여행사가 줄어드는 상황을 우려해야 한다. 비즈니스 노선은 그렇다 치고 투어 노선은 여행사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전체 파이가 커지면서 부글부글 끓어야 서로의 몫이 커지는 것이다. "


▶주가가 많이 떨어졌다.

"외국인이 50% 있다가 엄청 탈출했다. 본국에서 무조건 한국시장에서 나오라고 해 다 팔고 간다고 하더라.지금은 외국인 전체 평균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 오히려 낫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영업을 잘 해서 실력을 보여준다면 곧 효과가 나올 것이다. 올해는 5만원 선은 가야 하지 않겠나. 3년 이내에 8만~9만원 선을 기대하고 있다. "


▶여행사 인수를 통해 덩치를 불릴 계획은 없나.

"여행사 인수해봐야 별 얻을 게 없다. 오히려 여러 개의 회사로 분리해야 한다. 상호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


▶10년 뒤의 하나투어 모습은.

"10년 뒤면 세계 톱이 되어 있지 않을까. 2020년 세계 톱이 목표인데 시장 변화 상황을 보면 빨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느 나라도 우리만큼 미래를 준비하거나 경쟁력을 갖춘 여행사가 많지 않다. 일본의 JTB도 미국의 익스피디아도 우리와 파트너십을 원하고 있다. 우리의 네트워크나 비즈니스 모델 등 모든 게 검증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

권 사장은 한국의 관광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그는 관광 콘텐츠를 강조했다. 서울 주변에 세계적 명소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산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방안은 어떨까요. 도심 한복판에 북한산 같은 산이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어요. 대남문 등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갈 수 있고,근사한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도 볼 수 있다면 호주 시드니의 오페라하우스보다 몇 배 더 인기 있을 거예요. "

TV 영문자막 서비스는 발상이 재미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늦은 저녁 남는 시간에 심심해 하지 않고 자연스레 한국문화에 접할 수 있으며,유학으로 빠지는 수요를 줄일 수 있기도 하니 일석삼조가 아니냐는 설명이다. "


글=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사진=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