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축구] 재출발 이운재 `속죄의 선방' 펼칠까
"1년여 만에 다시 돌아오니 조금 어색하네요.실망시켜 드린 팬들에게 죄송하다고 사과를 드립니다.(속죄하려면)열심히 하는 수 밖에 없겠죠. 후배들이 기량을 잘 발휘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는 선배가 되겠습니다"

`거미손' 골키퍼 이운재(35.수원)는 10일 오전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월드컵축구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3차전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원정경기를 앞두고 소집된 축구대표팀 일원으로 경기도 파주 NFC(축구대표팀트레이닝센터)에 들어서면서 누구보다 각오가 남달랐다.

지난해 7월 아시안컵에서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고도 음주사건으로 그해 11월 대표팀 1년 자격정지 징계를 받고 나서 무려 1년4개월여 만에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가슴에 단 태극마크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이운재는 30대 중반에도 국내 K-리그 주전 수문장 가운데 최고 실력을 자랑한다.

수원의 주전 골키퍼로 올 시즌 정규리그와 컵대회를 합쳐 37경기에 출장해 27실점을 기록해 경기당 평균 0.73실점에 불과했다.

대표팀 주전 자리를 다툴 정성룡(성남.경기당 실점 0.82)과 백업 수문장인 김영광(울산.0.97)을 성적에서 압도한다.

특히 이운재는 올해 포항과 컵대회 4강 승부차기에서 눈부신 선방을 펼쳐 소속팀을 정상으로 이끌었고 정규리그에서도 철벽 방어로 챔피언결정전 직행에 디딤돌을 놨다.

4강 신화를 창조했던 2002 한.일 월드컵과 2년 전 독일 월드컵 때에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이운재는 대표팀에서 자신을 불러준 허정무 감독의 낙점을 받으려면 후배들과 생존 경쟁에서 살아 남아야 한다.

A매치 109경기에 출장한 `백전노장'임에도 그동안 허정무호의 붙박이 골키퍼를 맡아왔던 정성룡보다 안정감이 있다는 걸 실력으로 입증해야 한다.

허정무 감독은 월드컵 3차 예선 요르단과 홈경기 때 2-2로 비긴 뒤 당시 징계가 해제되지 않았던 이운재의 `사면설' 카드를 꺼냈다 언론의 집중포화를 받고 뜻을 접었을 만큼 이운재에 대한 애착이 각별하다.

이운재로서는 1989년 이탈리아 월드컵 예선에서 2-0으로 이긴 이후 19년 동안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천적' 사우디를 잡을 천군만마 역할을 해야 하는 숙제를 안은 것이다.

이운재도 대표팀 복귀 느낌이 나쁘지 않다.

대표팀 엔트리 25명을 발표했던 지난 3일에는 셋째 아이인 아들을 얻었고 소속팀은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직행했다.

2000년 아시안컵 이후 8년 만에 허정무 감독과 감독-선수로 다시 호흡을 맞춘 이운재는 이날 허 감독으로부터 "나가서 (술)먹지 마라, 사우디에는 술이 없다더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거리감이 없다.

이운재의 각오도 결연하다.

그는 "다시는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며 강조한 뒤 "내 자신과 1년여 시간을 보내면서 약속했던 것들을 어느 정도 지켰다고 생각한다.아직 2% 부족하고 채워야 할 부분이 있는 만큼 대표팀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고 챔프전 두 경기에서 좋은 결과로 마무리를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성룡이와 (김)영광이가 있지만 기량은 백지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열심히 노력한다면 문은 항상 열려 있고 두드려서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노력한다면 좋은 기회가 주어질 것"이라며 대표팀에서 활약을 다짐했다.

대표팀 유니폼을 출발선에 다시 선 이운재가 음주파문 아픔을 딛고 허정무호를 구할 `수호신'으로 거듭날지 주목된다.

(파주연합뉴스) 이동칠 기자 chil881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