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사에서 2008년은 올림픽 첫 금메달을 따낸 해로 길이 기억될 것이다.

2008 베이징올림픽 본선 풀리그를 7전 전승으로 통과한 한국은 준결승전에서 숙적 일본을 격파한 데 이어 8월23일 쿠바와 결승전에서 3-2 짜릿한 승리를 거두고 남자 구기단체 종목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프로야구 27년간 쌓이고 쌓인 힘이 이런 결과를 낳은 일등공신이었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은 프로야구가 출범한 1982년 서울 잠실구장에서 열린 제27회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이래 주요 국제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일이 없었다.

아시아에서만 몇 차례 우승을 차지했을 뿐 세계 정상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종합대회만 따져봐도 아시안게임에선 1998년과 2002년 대회에서 우승했지만 올림픽 성적은 처참했다.

한국 야구는 프로 선수들이 출전하기 시작한 2000년 시드니대회부터 세계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였다.

구대성과 이승엽 등이 신구 조화를 이룬 대표팀은 4승3패 성적으로 4강에 올랐고, 준결승에선 미국에 2-3으로 졌지만 3-4위전에서 일본을 3-1로 꺾고 동메달을 따냈다.

2004년 아테네대회 예선 탈락의 아픔을 겪은 한국 야구의 꿈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구체화됐다.

메이저리거가 총출동한 미국과 일본을 연파하고 6연승 행진을 벌인 한국은 비록 준결승전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이때부터 남몰래 정상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베이징올림픽 준비 과정은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야구가 제외되는 가운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올림픽에서 최소한 동메달을 따자는 소박한 목표를 내걸고 출발한 대표팀은 3월 대만 타이중에서 열린 올림픽 최종예선을 통해 올림픽 출전 8개국에 합류했다.

갈등은 베이징에 갈 김경문 감독이 24명을 고르는 과정에서 빚어졌다.

마운드는 류현진(한화)과 김광현(SK), 타선은 해외파 이승엽(요미우리)를 중심으로 이용규(KIA), 김현수(두산) 등으로 꾸렸지만 홈런, 타점 선두를 달리던 김태균(한화) 대신 보름 넘게 무홈런, 무타점 빈타에 시달리던 이대호를 포함한 점과 KIA 에이스 윤석민 대신 임태훈(두산)을 집어넣어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임태훈을 빼고 윤석민을 뒤늦게 포함하는 수준에서 대표팀 선정을 마무리한 한국은 미국(8-7), 중국(1-0), 캐나다(1-0), 일본(5-3), 대만(9-8), 쿠바(7-4), 네덜란드(10-0)를 잇따라 격파하며 본선 풀리그를 1위로 통과했다.

가장 큰 감동을 안겨준 장면은 8월22일 일본과 준결승전에서 연출됐다.

0-2로 끌려가다 2-2동점을 만드는 데 성공한 한국은 8회말 1사 1루에서 전 타석까지 25타수 3안타로 부진하던 4번 타자 이승엽이 일본 투수 이와세 히토키로부터 오른쪽 담을 넘기는 2점 홈런을 뽑아내 승부를 갈랐고, 고영민과 강민호의 적시타로 2점을 보태 6-2 역전승을 완성했다.

23일 결승 상대는 아마추어야구 세계 최강 쿠바.
이번엔 선발 류현진의 역투 속에 이승엽의 선제 투런포와 이용규의 적시타로 3-2로 앞선 뒤 9회 1사 만루 위기에서 마운드에 오른 정대현이 상대 강타자 율리에스키 구리엘의 병살타를 이끌어내 올림픽 첫 금메달 드라마를 완성했다.

퍼펙트 금메달을 따낸 한국은 8월23일을 야구의 날로 지정했고, 내년 3월 WBC에서 다시 한 번 한국야구 실력을 세계만방에 떨칠 순간을 기약했다.

이같은 올림픽의 감격은 후반기 프로야구에도 이어져 13년만에 500만 관중을 돌파했고 SK 와이번스의 한국시리즈 2연패로 끝난 포스트시즌도 입장수입이 50억원이 넘는 흥행대박을 터뜨리며 제2의 전성기를 누리게 됐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