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스폰서 "후원효과 떨어져"
떼지어 다니며 한국말 수다 '눈살'
잘나가는 한국 선수 견제 의혹도



미국 LPGA투어가 선수들에게 영어 구사를 의무화하고 구술시험까지 치르게 한다는 발표는 충격적이다. 투어에 입문하는 신인들에게는 당장 적용하고,기존 멤버에 대해서는 2009년 말 첫 테스트를 한다.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면 2년간 '대회 출전 보류'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 골자다. 투어에서 아시아계 선수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면서 특단의 조치가 내려진 것이다.

◆도입 배경

투어가 영어 사용 의무화를 도입한 표면적 이유는 대회 스폰서들이 반대한다는 점이다. 스폰서들은 몇십억원의 거금을 들여 대회를 후원하는데,우승자가 영어를 못하는 선수일 경우 매스컴 노출도 등 후원 효과가 미미해진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특히 미국 경기가 좋지 않아 스폰서가 하나둘 떨어져 나가면서 투어로서는 긴급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선수가 영어를 하지 못하면 팬이나 프로암 파트너,미디어에 대한 서비스가 충분치 못하다는 점도 감안한 조치다. 투어는 스폰서 핑계를 대면서 '특정 선수나 국가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고 밝혔지만,실제로는 날로 그 숫자가 늘어나고 있는 아시아계 선수들의 투어 진출을 제한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올해만 해도 4개 메이저대회 가운데 3개 대회를 아시아 선수들이 휩쓸었다. 맥도널드LPGA챔피언십은 청야니(대만),US여자오픈은 박인비,브리티시여자오픈은 신지애가 각각 타이틀을 차지했다.

◆한국 선수 겨냥 의혹

이번 극단적인 조치는 다분히 한국 선수를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한국 선수들이 투어 내에서 원인 제공을 한 면도 없지 않다. 40여명의 한국 선수들은 떼지어 몰려다니며 한국어로 떠드는가 하면,한국 선수 부모들끼리 그린이나 코스 주변에서 큰 소리로 언쟁을 해 갤러리·스폰서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많았다. 오죽하면 투어에서 몇몇 한국 선수 부모에 대해 대회장 출입금지 조치를 내렸을까.

한국 선수들은 또 프로암대회에서도 스폰서 및 그들의 고객들과 인사만 겨우 나눈 채 부모나 캐디와 함께 코스 점검이나 연습 라운드에만 신경쓰는 일이 다반사다. L선수는 우승하고도 인터뷰 때 카메라 앞에서 꿀먹은 벙어리처럼 서 있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B선수는 대회가 54홀로 치러지는 줄 알고 3라운드 후 400마일을 자동차로 달려 집에 갔다가 뒤늦게 72홀 경기인 줄 알고 밤새 다시 경기장으로 되돌아오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 모두 영어가 제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한국 선수들은 투어에서 비(非)미국 선수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그에 걸맞은 역할을 하지 못함으로써 이 같은 조치를 자초한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세리 키즈'들 발등에 불

한참 물이 오르고 있는 '박세리 키즈'에게 직접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국내 '1인자' 신지애(20·하이마트)는 내년 미국 진출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그러나 영어가 여의치 않으면 그 계획을 보류할 수밖에 없다. 그 밖에도 지은희 김송희(이상 휠라코리아) 박희영(이수건설) 김주미(하이트) 최나연(SK텔레콤) 오지영(에머슨퍼시픽) 등 이미 미국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도 영어 '과외'를 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미국 진출을 노리는 10대 선수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듯하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유소연(18·하이마트) 최혜용(18·LIG) 김하늘(20·코오롱) 등 기대주들도 영어가 발등의 불이 됐다. 지금까지는 골프 기량만 높이면 됐지만,이젠 영어까지 신경을 써야 한다.

프로를 지망하는 초·중·고교 선수들도 영어공부를 등한시해서는 미국에 건너갈 수 없을 전망이다. 아예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영어권 국가로 조기 유학을 가서 골프를 배우는 사례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향후 대책 마련 시급

이번 조치는 이미 예상됐다. 그런데도 한국 선수들은 그동안 영어나 서구 문화에 대한 공부없이 골프에 올인했고,오직 골프 기량 하나만 믿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러다 보니 말문이 트이려면 3~4년이 걸리고,그 전에 우승이라도 하면 통역을 대동하거나,질문에 몇 마디 대답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한국 선수들이 어려서부터 책가방을 팽개친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등교는 형식적이고 오로지 기량 연마에만 매달린다. 미국 일본 선수처럼 공부와 골프를 병행하지 않고 골프 하나만 하다 보니 '스윙 머신' '샷 기술자'가 되고 만다. 일본 LPGA투어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진출을 제한하기 위해 올해부터 퀄리파잉 토너먼트에서 일본어로 된 규칙 테스트를 통과해야 투어 입회 자격을 주기로 했다.

한 골프 관계자는 "한국 선수들은 미국·일본 LPGA투어의 조치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중고골프연맹이나 대한골프협회는 주니어 선수들에게 골프와 공부를 함께 시키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김경수 기자 ksm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