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마라톤이 베이징올림픽에서 아프리카 철각들의 속도전에 완패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인 이봉주(38)를 필두로 이명승(29.이상 삼성전자), 올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 7위에 오른 김이용(35.대우자동차판매) 등 세 명이 24일 남자 마라톤에 출전했지만 경쟁자들과 현격한 기량차를 드러내며 10위권 밖에 머물렀다.

오인환 삼성전자육상단 감독은 "2시간 9분대에서 우승자가 가려지고 이봉주가 최대 6위까지 할 것으로 기대했으나 아프리카 선수들이 초반 워낙 빠른 레이스를 펼친 탓에 예상이 완전히 빗나갔다"고 말했다.

월계관을 쓴 사무엘 완지루(22.케냐)는 2시간06분32초라는 우수한 기록으로 정상을 밟았다.

5㎞당 랩타임은 20㎞ 지점까지는 14분33초대를 끊었고 체력이 떨어진 후반에도 15분15초대를 꾸준히 유지하며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된 페이스를 자랑한 끝에 24년 만에 올림픽 기록을 갈아치웠다.

완지루 뿐 아니라 초반 10㎞부터 치고 나선 선두그룹은 대부분 14분대 후반에서 15분대에 랩타임을 끊고 속도전을 이끌었다.

오 감독은 "이번 대회에 좋은 선수들이 많이 나와 역대 올림픽 중 가장 빠른 기록이 생산될 것"이라고 예상은 했으나 이렇게 빨리 뛸 줄 몰랐다고 했다.

초반부터 경쟁자들이 힘을 내자 한국 3인방도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페이스를 올릴 수밖에 없었다.

이명승은 랩타임 15분 40-50초대를 유지하다 막판 16분대 후반으로 처졌고 이봉주는 초반부터 16분대를 뛰다 나중에는 17분대로 늦어졌다.

김이용은 17분대 후반에서 18분대까지 밀렸다.

대표 3인방은 코스 분석 후 35㎞ 완만한 오르막 경사가 생기는 지점을 승부처로 삼았고 15-20㎞ 지점에서 스피드 싸움이 붙는다면 그 때부터 경쟁을 벌이기로 했으나 시작과 함께 5-10㎞ 지점부터 선두권과 후위그룹의 격차가 벌어지자 적지 않게 당황한 것으로 보인다.

오 감독은 "선두권의 랩타임을 15분30초로 생각했는데 보통 14분50초씩을 뛰었다.

예상보다 40초 이상 빨랐다.

그만큼 아프리카 선수들이 초반부터 전력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체력은 훈련을 통해서도 길러질 수 있으나 스피드는 선천적으로 타고 나야 한다.

이봉주는 예전부터 스피드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었는데 훈련만으로 이를 쉽게 극복하기는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현대 마라톤의 주요 트렌드는 속도다.

육상 10,000m의 황태자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35.에티오피아)가 마라톤으로 종목을 전환한 지 3년 만이던 지난해 베를린마라톤에서 2시간4분26초로 세계기록을 세우면서 속도전에 불이 붙었다.

마라톤 코스가 평탄해 좋은 기록이 양산되는 런던마라톤과 베를린마라톤은 기록 단축을 노려볼만한 대회로 꼽힌다.

실제 지난 4월 케냐의 마틴 렐과 완지루 등은 런던마라톤에서 2시간5분15초, 2시간5분24초의 역대 로 1,2위를 차지했다.

3위 압데라힘 굼리(32.모로코)도 2시간5분30초를 찍는 등 이날 역대 마라톤 기록 중 4~6위에 해당하는 우량기록이 쏟아졌다.

세계적인 추세에 따르면 2시간4-5분 대를 뛸 수 있는 스태미너와 스피드를 갖춰야 국제대회에서 우승을 바라볼 만 하다.

그러나 이봉주가 2000년 도쿄마라톤에서 작성한 한국기록(2시간7분20초)이 8년째 깨지지 않고 있고 '포스트 이봉주'가 없는 상황에서 한국 마라톤의 침체는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베이징=연합뉴스)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