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억 지구촌을 감동과 환희의 세계로 끌어들였던 2008 베이징올림픽 성화가 마침내 사그라들었다.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개최된 베이징올림픽이 24일 저녁 9시 주경기장인 궈자티위창(國家體育場)에서 화려한 폐막행사를 갖고 16일간 대축제를 마무리했다.

'광란과 열정'을 주제로 내세운 폐막식은 올림픽을 평안하게 끝낸 기쁨을 신명나게 만끽하는 뒤풀이 한마당이었다.

행사 시작을 알리는 불꽃 카운트 다운으로 출발한 폐막식은 형형색색의 화려한 복장을 한 무희들의 춤사위 공연이 이어진 뒤 각 국 국기가 입장하면서 분위기가 달아올랐다.

한국은 여자 역도 75㎏ 이상급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장미란(고양시청)이 태극기를 들었다.

만국기가 궈자티위창 중앙에 마련된 무대에 원형으로 도열했고 올림픽의 진정한 주인공인 각국 선수단이 입장했다.

선수들은 개막식 때 보였던 긴장감 대신 해방감에서 나온 여유로운 미소를 띠고 자유롭게 입장해 원형 무대 근처로 모여들었다.

국기를 흔들고 사진을 함께 찍는 등 국적과 인종을 떠나 선수들은 격전의 공간에서 쌓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누며 4년 후 런던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류치 베이징올림픽조직위원회 위원장의 환송사와 자크 로게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의 답사가 이어졌고 궈진룽 베이징시장이 올림픽기를 보리스 존슨 런던시장에게 인도하면서 자연스럽게 런던올림픽을 소개하는 순서로 연결됐다.

전광판으로 런던 시가지를 형상화한 그래픽 화면이 펼쳐진 뒤 런던을 상징하는 빨간색 2층 버스가 궈자티위창 안쪽으로 진입했다.

버스는 갑자기 해체되더니 그 사이에서 팝스타 레오나 루이스와 록그룹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가 튀어 나았다.

듀엣 공연 중간에는 영국이 낳은 불세출의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33.LA)이 등장해 축구공을 멀리 차는 것으로 런던에 대한 홍보를 마쳤다.

런던올림픽조직위원회는 8분짜리 프레젠테이션에 39억원을 쏟아부었다.

이날의 하이라이트는 성화 소화 방식이었다.

개막식에 이어 폐막식에서도 총연출을 맡은 장이머우 감독은 성화 점화 때 와이어를 이용한 '지붕타기'로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과 달리 소화는 마음에 긴 여운을 남기는 조용한 방법을 택했다.

개막식 때 나왔던 두루마리가 다시 한번 등장했다.

두루마리는 당시 화려했던 중국 문명을 소개하는 매개체로 활용됐었다.

이날은 올림픽을 끝내고 고국으로 돌아가는 선수들을 상징하는 세 명의 남자가 비행기 트랩을 올랐고 그 중 한 명이 두루마리를 펼쳤다.

그러자 궈자티위창 지붕이 다시 가상의 화면으로 변하면서 올림픽 기간 날짜별 환희의 순간이 재생됐다.

장이머우 감독은 모두가 다시 한번 베이징올림픽 환희의 순간을 곱씹어보도록 한 뒤 두루마리가 접힐 때 성화가 스스로 꺼지는 방식을 선보였다.

마치 한 권의 앨범처럼 16일간 베이징에서 쌓은 경험과 추억을 소중히 간직해달라는 당부와도 같았다.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가수 '비'는 아시아 가수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이번 대회 공식 주제가 중 하나인 '워아 베이징'을 부르며 분위기를 북돋웠다.

세계 3대 테너 중 한 명인 플라시도 도밍고(67)와 중국 민요의 여왕 쑹쭈잉(42)은 합동 공연을 통해 중국과 세계의 소통을 이야기했고 윈난성 출신 예술단원들의 화려한 댄스, 전통악기 얼후(중국 아쟁) 연주 등 무궁무진한 중국의 볼거리가 이어졌다.

중화권 쿵푸 영화스타로 세계적으로도 명성이 자자한 청룽과 류더화도 빠지지 않았다.

이들은 흥겹게 노래를 열창했고 공연단과 선수들은 강강술래를 타며 베이징에서 마지막 대동의 장을 연출했다.

폐막식의 대미는 개막식 때와 마찬가지로 베이징 시내 18곳에서 터진 웅장한 불꽃이 장식했다.

도쿄(1964년), 서울(1988년)에 이어 아시아에서 세 번째로 열린 베이징올림픽은 중국인이 100년의 꿈을 담아 7년간 정성스레 준비한 중화 사상의 결정판이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이하 전 국민이 똘똘 뭉쳐 세계 일류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도약대로 삼은 올림픽에 전력을 쏟았고 중국은 일단 성적에서 강력한 라이벌 미국을 누르면서 가능성을 보여줬다.

1984년 LA 올림픽부터 본격적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기 시작한 개최국 중국은 만년 2위에 머물다 13억 중국인의 열화와 같은 응원을 등에 업고 금메달 51개, 은메달 21개, 동메달 28개로 메달수 딱 100개를 채워 초일류국가 미국을 제치고 종합 1위로 우뚝 섰다.

미국은 금메달 36개를 따내는 등 총 메달수에서는 110개로 중국을 앞섰으나 기대를 모았던 남녀 육상 단거리에서 자메이카에 발목이 잡혀 1위 수성에 실패했다.

중국과 미국의 치열한 메달 다툼 속에 한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를 획득해 사상 최고 성과를 올리며 국가별 메달 순위에서 종합 7위를 확정지었고 8년 만에 아시아 2위를 탈환했다.

유도의 최민호(한국마사회)가 60㎏급에서 가장 먼저 금맥을 뚫었고 '마린보이' 박태환이 자유형 400m에서 우승, 불모지 수영에서 사상 첫 금메달을 일구며 감동을 줬다.

전통적 메달 박스 양궁과 태권도에서는 각각 2개, 4개로 큰 힘을 보탰다.

'여자 헤라클레스' 장미란은 역도에서 무려 세계신기록을 5개나 수립하며 여유 있게 금메달을 목에 걸었고 사재혁(역도) 진종오(사격) 등도 4년간 흘린 구슬땀을 금메달로 보상 받았다.

'살인윙크'로 국민 남동생으로 떠오른 이용대는 이효정(삼성전기)과 호흡을 이룬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값진 금을 일궜다.

야구대표팀은 투혼을 발휘해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내며 단체 구기종목에서 16년 만에 금맥을 잇고 해피엔딩을 마무리했다.

그러나 남북관계 경색으로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이후 8년간 지속해 온 남북 공동입장이 무산된 건 옥에 티였다.

활발하게 진행됐던 남북 스포츠교류도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베이징올림픽은 마이클 펠프스(23.미국)와 우사인 볼트(22.자메이카)라는 물과 땅의 신(神)을 낳았다.

펠프스는 신전 '워터큐브'에서 여러 차례 금빛 물살을 가르며 사상 첫 8관왕의 위업을 수립했다.

번개처럼 느닷없이 나타난 볼트는 남자 육상 단거리 세 종목에서 감전할 정도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며 궈자티위창 트랙을 온통 금빛으로 물들였다.

안타까운 소식도 있었다.

남자 육상 110m 허들에서 대회 2연패를 노리던 류샹(25)은 갑작스러운 오른쪽 발목 부상으로 대회를 포기해 13억 중국민의 가슴에 멍을 지웠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4천500회 이상 강력한 도핑을 실시한 결과 북한 사격 선수 김정수(31)의 은메달과 동메달을 박탈당하는 등 여러 선수의 기록과 메달을 빼앗고 경종을 울렸다.

체조 선수 나이 조작과 관련한 미국과 중국의 신경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메달을 내팽개친 레슬링 선수와 판정에 불복해 심판을 때린 태권도 선수 등 갖가지 사연으로 논란을 불러 일으킨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연일 터져 나온 감동스토리는 애꿎은 소식을 수시로 잠재웠다.

나탈리 뒤 투아(24.남아프리카공화국)는 한쪽 다리만으로 여자 마라톤 수영(10㎞)에 출전, 16위에 오르며 무한한 감동을 선사했고 혈액암을 극복하고 역시 같은 종목에서 우승한 네덜란드 수영 마라톤 대표 마르텐 판데르베이덴(27)의 사연은 세계인의 눈시울을 자극했다.

외팔 탁구소녀 나탈리아 파르티카(19.폴란드), 고환암 판정을 받고도 에릭 섄토(25.미국)의 눈물겨운 도전, 여자 핸드볼 대표팀의 근간을 이룬 아줌마 부대가 노래한 '우생순'의 감격 등 베이징올림픽은 오직 스포츠만이 줄 수 있는 가슴 뭉클한 감동을 아낌없이 선사했다.

16일간 써내려간 각본없는 드라마를 뒤로 하고 베이징의 성화는 어둠으로 사라졌다.

30번째를 맞는 런던올림픽에서는 보다 극적이고 더 순수한, 열정의 무대를 예고하면서.


(베이징=연합뉴스)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