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형택(32.삼성증권)은 여러 모로 한국 테니스에 선구자와 같은 존재다.

2000년 US오픈에서 단식 16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던 이형택은 이후 2003년에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대회 단식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7년에는 랭킹 36위까지 오르는 등 그야말로 한국 테니스 역사의 페이지를 무수히 장식했다.

올림픽에서도 마찬가지다.

1996년 애틀랜타 대회에 윤용일 현 코치와 한 조로 복식에 처음 출전했던 이형택은 이후 2004년 아테네까지 빠짐없이 올림픽 무대를 밟아왔다.

이번 베이징올림픽에도 나가게 된 이형택은 4회 연속 올림픽 출전이라는 힘든 업적을 이루게 됐다.

5살이나 어린 로저 페더러(27.스위스)가 어느덧 노장 소리를 들어가는 현실에서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이형택의 선전은 아무리 칭찬을 해도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특히 이번 베이징올림픽은 자력으로 출전권을 따낸 것이라 더 의미가 크다.

출전 자격이 결정될 당시 세계 55위였던 이형택은 여유있게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전까지는 자력으로 따내지 못하고 대륙별 안배에 의한 와일드카드로 올림픽에 나갔었다.

이형택은 "운동 선수로 마지막이 될 올림픽이라 감회가 새롭다.

특히 마지막에 자력으로 출전하게 돼 더 기쁘다"면서 "성적으로 유종의 미까지 거둘 수 있다면 더 좋겠다"고 말했다.

최근 이형택은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 코트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원래는 8월 말 열리는 US오픈을 앞두고 북미 지역에서 열리는 US오픈 시리즈에 출전하다가 베이징으로 날아올 예정이었지만 무릎 상태가 좋지 않아 계획을 변경했다.

6월 초 영국 런던에서 열린 투어 대회 경기 도중 다친 무릎이 아직 정상으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형택은 "80에서 90%까지는 회복된 것 같다.

그러나 아직 완전히 낫지 않았고 경기를 할 정도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대회 출전보다 훈련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설명했다.

몸 상태는 완벽하지 않지만 아직 2주 정도 시간이 남았기 때문에 성적에 대한 욕심까지 접을 수는 없다.

이형택은 "정상 컨디션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목표를 세우기 보다는 다치지 않는 것이 우선"이라면서도 "올림픽 최고 성적이 1회전 통과였으니까 그 이상은 해야 되지 않겠느냐. 또 이기다 보면 상승세를 타게 된다"고 각오를 밝혔다.

'선구자'로서 이후가 걱정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본인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밝힌 만큼 2012년 런던 올림픽 테니스 종목에 다른 한국 선수가 나갈 수 있을 지 전망이 어두운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현재 남자부에서 이형택 다음으로는 253위 전웅선(22)이 있는데 이 정도 랭킹으로는 올림픽 와일드카드를 받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형택은 후배들의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아직 4년이 남았다.

예상을 하기 어려운 기간"이라며 "갑자기 어떤 선수가 자신감을 갖고 상승세를 탈 수도 있기 때문에 충분히 올림픽에 나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이징과는 인연이 좋은 편이다.

2006년 베이징에서 열린 투어 대회에서 당시 세계 3위였던 이반 류비치치(크로아티아)를 8강에서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고 지난 해 같은 대회에서도 8강까지 올랐다.

이변이 많은 올림픽 특성 상 대진 운과 그날 컨디션만 좀 따라준다면 이형택이 일을 내지 말란 법도 없다.

이형택은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올림픽 이후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도전하겠다"며 베이징 출사표를 던졌다.

(서울연합뉴스) 김동찬 기자 emaili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