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무대. 귀에 익은 인기그룹 브라운아이즈의 히트곡 '가지마 가지마'의 선율과 함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김나영(18.연수여고)이 미끄러지듯 등장했다.

순간 러시아의 피겨 황제 예브게니 플루센코가 링크 반대편을 향해 사라져가는 김나영을 향해 손을 내밀며 떠나가는 연인을 잡기 위한 애절한 연기로 7천여 팬들의 탄식을 자아냈다.

플루센코가 잠시 링크를 떠나자 이번에는 러시아의 피겨의 자존심 알렉세이 야구딘이 플루센코에게 빼앗긴 김나영의 마음을 잡기 위한 '사랑의 세레나데'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피겨 남자 싱글의 양대 산맥으로 치열한 자존심 싸움을 펼쳐왔던 세계선수권대회 네 차례 우승의 야구딘과 세 차례 우승에 빛나는 플루센코가 한 무대에 섰다는 것 만으로도 눈길을 끈 무대에서 한국의 차세대 유망주 김나영이 함께 트리오 연기를 선보이자 국내 팬들은 목이 터져라 환성을 내질렀다.

태풍 갈매기의 영향으로 장대비가 쏟아진 19일 오후 송파구 잠실학생체육관.
폭우 속에 '현대카드 슈퍼매치 Ⅶ-08 '슈퍼스타스 온 아이스' 무대를 찾은 피겨팬들은 경기장 바깥의 후텁지근한 날씨도 잊은 듯 눈앞에서 펼치지는 세계적인 피겨 스타들의 열정적이고, 때로는 감미로운 연기에 넋을 잃었다.

오프닝 무대에 나선 참가자 전원은 팝스타 어셔의 '러브 인 디스 클럽'의 관능적인 음악에 맞춰 섹시한 안무로 아이스쇼의 분위기를 달궜다.

첫 무대의 주인공은 플루센코. 그리스를 대표하는 음악 '시르타키'에 맞춰 다양한 트리플 점프와 더블 악셀(공중 2회전반)로 피겨 황제의 참모습을 보인 뒤 코믹한 스텝 연기로 갈채를 받았다.

연이어 등장한 푸른색 의상의 김나영은 국악그룹 아라연이 링크 한쪽 편에서 라이브로 연주하는 '아베 마리아'에 맞춰 애절한 연기로 관중의 감성에 호소했다.

'스핀의 왕' 스테판 람비에(스위스)는 플라멩코 선율에 맞춰 정열의 무대에서 '팔색조' 스핀 동작으로 인생의 희노애락을 표현했고, 여자 싱글 세계랭킹 1위 아사다 마오(일본)는 영화 '여인의 향기'의 유명해진 '포르 우나 카베자'의 탱코 리듬에 몸을 실어 깨끗한 트리플 러츠와 플립은 물론 발레 동작을 연상하는 재치있는 스텝 동작으로 환호를 받은 뒤 빠른 스핀으로 연기를 마쳤다.

올해 세계선수권대회 챔피언 제프리 버틀(캐나다)은 '로빈 인 더 스카이'를 통해 흐르는 스티비 원더의 감미로운 음성에 걸맞게 부드러운 꽃미남 미소로 팬들의 꽃다발 세례를 받았고, 야구딘은 복서로 변신해 관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국내 유망주들의 무대로 2부를 시작한 아이스쇼는 김나영-플루센코-야구딘의 트리오 연기와 더불어 라이사첵이 마이클 잭슨의 히트곡 '빌리진'에 맞춘 파워 넘치는 연기로 절정에 이르렀다.

뜨거워진 쇼의 정점은 올해 세계선수권대회 우승에 빛나는 아사다 마오의 몫.
검정색 의상에 모자를 소품으로 들고 나온 아사다는 빅밴드의 빠른 재즈 선율에 탭 댄스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스텝과 다양해진 춤 동작으로 세계랭킹 1위 다운 숨막히는 무대를 선사했다.

쇼가 펼쳐지는 동안 환호성이 그칠 줄 몰랐던 슈퍼매치는 참가자 전원이 자신의 장기를 선보이는 피날레 무대를 끝으로 세 시간의 뜨거운 연기를 마쳤다.

(서울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