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이 44년 만에 메이저대회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모습을 지켜보며 지난 23일간 지구촌 축구팬들을 잠 못 들게 했던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8)가 30일(한국시간) 막을 내렸다.

향후 세계축구의 흐름을 가늠해볼 수 있는 '미니 월드컵'답게 숱한 명승부가 이어졌고, 참가국의 희비도 극명하게 엇갈렸다.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것으로 거스 히딩크(62) 감독이 이끈 '러시아의 반란'을 꼽을 만하다.

구 소련 해체 이후 쇠락의 길을 걸으며 유럽축구의 변방으로 밀려난 러시아는 마법사 히딩크의 조련으로 유럽 4강 팀으로 부활했다.

러시아는 조별리그 첫 경기에서 스페인에 1-4로 대패해 불안한 출발을 했지만 지난 대회 챔피언 그리스를 1-0으로 눌렀고, 3차전에서는 한 수 위 전력으로 평가 받던 스웨덴을 2-0으로 꺾어 조 2위로 8강 대열에 합류했다.

이어 8강에서는 조별리그에서 막강 화력을 뽐내며 3전 전승을 거둔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를 연장 접전 끝에 3-1로 돌려세웠다.

비록 준결승에서 대회 우승국 스페인에 다시 0-3으로 완패해 돌풍은 끝이 났지만 러시아는 유럽 강호로 거듭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소중한 경험을 쌓았다.

조국 네덜란드에 '어퍼컷 세리머니'를 날린 히딩크 감독은 '4강 징크스'에 다시 울었지만 그가 왜 명장으로 평가받는 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이탈리아, 프랑스, 루마니아를 차례로 완파하고 1위로 죽음의 조를 통과하며 우승 후보로 급상승한 네덜란드의 거침없는 행보는 러시아에 일격을 당해 8강에서 멈췄다.

터키의 선전도 돋보였다.

터키는 조별리그 스위스와 2차전(2-1 승), 체코와 3차전(3-1 승), 크로아티아와 8강(1-1 무승부 뒤 승부차기 3-1 승) 등 세 경기 연속 짜릿한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며 대회 사상 처음으로 준결승까지 올랐다.

3전 전승으로 B조 1위로 8강에 오른 '다크호스' 크로아티아의 경기력도 인상적이었지만 터키의 돌풍을 피해가지는 못했다.

터키는 주축 선수들의 줄 부상으로 팀을 꾸리기조차 힘든 상황에서 치른 독일과 준결승에서도 비록 경기 종료 직전 통한의 결승골을 얻어맞고 2-3으로 주저 앉았지만 '투르크 전사'들의 투지 넘친 플레이는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반면 나란히 죽음의 조(C조)에 속했던 2006 독일월드컵 우승.준우승국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세대교체의 실패로 맥없이 주저앉았다.

이탈리아는 네덜란드에 0-3으로 완패하고 루마니아와 1-1로 비긴 뒤 프랑스를 2-0으로 꺾고 가까스로 살아났다.

하지만 스페인과 8강에서 0-0으로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2-4로 패해 대회를 끝냈다.

프랑스는 더욱 참담했다.

단 1득점에 그치며 1승도 거두지 못하고 1무2패로 일찌감치 짐을 쌌다.

유럽선수권대회 사상 최고의 '기적'을 일으켰던 2004년 우승국 그리스도 3전 전패로 슬그머니 물러났다.

4년 전 '수비 중심의 역습 전술로 역대 가장 특색 없는 대회로 만들었다'는 비난과 '약자가 강자를 상대로 펼칠 수 있는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줬다'는 찬사를 동시에 받았던 그리스 축구는 이번 대회에서는 결국 한계를 드러냈다.

(서울연합뉴스) 배진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