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31)가 맨발 투혼으로 US여자오픈을 제패하던 광경을 졸린 눈을 비비며 지켜봤던 10살 짜리 꼬마가 10년 만에 US여자오픈 우승 트로피를 품에 안았다.

10년 전 박세리의 우승 모습을 보고 골프를 시작한 신세대 박인비(20)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첫 우승을 메이저대회에서 일궈내는 위업을 달성했다.

박인비는 30일(한국시간) 미국 미네소타주 에디나 인터라켄골프장(파73.6천789야드)에서 열린 제63회 US여자오픈골프대회 최종 4라운드에서 시속 32㎞ 강풍 속에서도 2언더파 71타를 쳐 나흘 동안 유일하게 언더파 스코어를 기록하는 안정된 경기를 펼친 끝에 합계 9언더파 283타로 역전승을 거뒀다.

같은 조에서 출발한 43세의 베테랑 헬렌 알프레드손(스웨덴.5언더파 287타)을 4타차 2위로 여유있게 따돌린 박인비는 LPGA 투어에서 가장 많은 상금이 걸린 이 대회(총상금 325만달러)에서 58만5천달러를 손에 쥐었다.

박인비는 1990년대 후반 외환 위기로 한국 사회가 고통을 받은 시기에 LPGA 투어에서 맹활약하며 희망을 줬던 박세리를 보고 골퍼의 꿈을 키워온 이른바 `박세리 키드' 세대.
박인비는 "10년전 세리 언니가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는 모습을 보고 이틀 뒤 골프를 시작했다"면서 "이렇게 빨리 이런 날이 올 줄 몰랐다"며 감격해했다.

1988년 7월23일생으로 만20세가 안된 박인비는 1998년 박세리가 맨발 투혼으로 우승하며 물꼬를 텄고 2005년 김주연(27)이 72번째 홀에서 환상의 벙커샷 버디로 우승트로피를 거머쥔 이 대회에서 한국인 우승자 계보를 이었다.

대회 역사상 만20세가 안된 선수가 우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까지 US여자오픈 최연소 우승자 기록은 박세리가 갖고 있었다.

2006년 2부투어인 퓨처스투어에서 상금 랭킹 3위에 오르며 2007년부터 LPGA 투어 출전권을 확보한 박인비의 첫 우승이자 한국인으로서는 박세리, 박지은(29.나이키골프), 김주연, 장정(28.기업은행)에 이은 다섯번째 메이저 퀸.
시즌 초반 우승 가뭄에 허덕였던 한국자매들은 이달 초 이선화(22.CJ)가 긴트리뷰트 대회 우승을 시작으로 지은희(22.휠라코리아)의 웨그먼스LPGA 우승 뒤 1주만에 다시 정상에 오르는 등 6월 동안 우승컵 세개를 챙겨 하반기 전망을 밝게 했다.

박인비와 동갑내기 김인경(하나금융)과 브라질 교포 안젤라 박(LG전자)이 4언더파 288타로 공동 3위, 김미현(31.KTF)이 3언더파 289타로 공동 6위에 오르는 등 톱10 안에 모두 4명이 포진하면서 코리안 파워를 과시했다.

이지영(23.하이마트)은 이븐파 292타로 공동 13위, 신지애(20.하이마트), 최나연(21.SK텔레콤), 장정은 2오버파 294타로 나란히 공동 19위에 자리했다.

전날 선두였던 스테이시 루이스(미국)는 4언더파 288타로 공동 3위, 2위였던 미국의 희망 폴라 크리머는 3언더파 289타, 공동 6위로 밀렸다.

선두에 2타 뒤진 공동 3위로 4라운드를 맞은 박인비는 1번홀(파4) 그린 밖 러프에서 친 칩샷을 버디로 연결시켜 기분좋게 출발했고 루이스와 크리머가 일찌감치 무너진 사이 2타차 단독 선두로 치고 나갔다.

루이스는 전반에 더블보기 1개, 보기 2개로 4타를 잃어 버렸고 크리머도 버디는 1개에 그치고 더블보기 2개, 보기 2개를 쏟아내며 우승권에서 멀어져 갔다.

박인비는 1번홀에 이어 2번홀(파5)에서도 버디를 잡아낸 뒤 6번홀(파4)과 8번홀(파3)에서 1타씩을 잃어 잠시 주춤했다.

하지만 우승에 대한 자신감이 넘쳐난 박인비는 후반에 더욱 힘을 발휘했다.

보기 위기를 정교한 퍼트로 넘긴 박인비가 11번홀(파4)과 13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하자 2위권과 격차는 이미 4타차로 벌어져 있었다.

박인비는 15번홀(파4)에서 두번째 샷을 핀 2m 거리에 떨어뜨린 뒤 아쉽게 버디 퍼트를 놓친 뒤 17번홀(파4)에서 1타를 잃었지만 18번홀(파5)에서 탭인 버디를 성공시키며 갤러리들의 갈채를 받았다.

이번이 US여자오픈 마지막 출전이 된 안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은 3오버파 295타로 공동 24위에 그쳤지만 마지막홀에서 이글을 잡아내며 확실한 팬서비스를 했다.

통산 세번째 메이저 타이틀을 노렸던 세계 랭킹 1위 로레나 오초아(멕시코)는 5오버파 297타로 공동 31위에 머물렀다.

한편 이번 대회에서 1998년 호주오픈 테니스대회 우승자 페테르 코다(체코)가 딸 제시카의 캐디백을 메고 나와 눈길을 끌었다.

아마추어로 출전한 제시카는 마지막날 데일리 베스트인 4언더파 69타를 쳐 공동 19위(2오버파 294타)로 뛰어 올랐다.

(서울연합뉴스) 최태용 기자 ct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