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62) 감독이 러시아 축구 대표팀을 이끌고 2008 유럽축구선수권대회 결승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그의 지도력은 크게 빛났다.

히딩크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러시아는 27일 오전(한국시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로2008 4강에서 후반에 세 골을 내주며 '무적함대' 스페인에 0-3으로 완패했다.

조별리그 1차전에서 1-4로 패했던 러시아는 스페인과 두 번째 대결에서 또 다시 쓴 잔을 들이키며 대망의 결승 진출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했다.

그러나 러시아는 구 소련 해체 이후 처음으로 유로대회 준결승에 진출, '히딩크 마법'은 세계 축구에 다시 한번 신선한 충격을 선사했다.

소련 해체 이전을 포함해 결승에서 네덜란드에 패해 준우승을 차지한 1998년 이후 20년 만에 준결승 진출로 러시아에서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치솟았다.

게다가 히딩크 감독은 조국 네덜란드와 8강에서 연장 접전 끝에 3-1로 이겨 이번 대회 최고 이변을 만들어 내며 '공은 둥글다'라는 축구의 묘미를 제대로 보여 줬다.

러시아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스페인에 밀렸지만 히딩크 감독은 이날 경기에서도 결코 수비적인 경기를 펼치지 않았다.

후반 5분 스페인에 선제골을 내준 상황에서도 침착함을 잃지 않고 공격력을 갖춘 두 명을 교체 투입해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고 러시아 선수들도 종료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끊임 없이 스페인 골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러시아는 끝내 동점골을 뽑아내지 못한 채 체력마저 소진돼 석 점 차 패배를 당했다.

실망감이 클 법도 했지만 히딩크 감독은 오히려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 대회에서 준결승 진출이라는 성적을 낸 우리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칭찬을 보냈다.

비록 패하기는 했지만 러시아 선수들의 잠재력을 높이 산 것이다.

히딩크 감독은 또 네덜란드를 이끌었던 1998년 프랑스월드컵, 한국 사령탑을 맡았던 2002년 한일월드컵에 이어 이번에도 결승 문턱을 넘지 못하는 등 메이저대회 '4강 징크스'를 털어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가는 곳 마다 기적을 일궈내는 히딩크 마법은 여전히 발휘됐다.

한일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썼던 그는 호주를 32년 만에 월드컵 본선에 올려 놓은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내친 김에 사상 첫 16강까지 이끌었다.

독일월드컵 이후에는 쇠락의 길을 걷고 있던 러시아를 맡아 '그라운드 반란'까지 지휘했다.

유로2008 예선에서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따돌리고 러시아를 본선 무대에 올려 놓은 히딩크 감독은 본선에서도 조별리그 1차전 패배를 딛고 지난 대회 우승 팀 그리스, '바이킹 군단' 스웨덴을 연파한 뒤 8강에서는 '오렌지 군단' 네덜란드마저 제압했다.

평균 26.1세로 젊은 선수가 주축인 러시아 공격진을 안드레이 아르샤빈과 로만 파블류첸코를 중심으로 개편했고 느슨했던 조직력을 강인한 체력을 앞세워 유기적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한상용 기자 gogo213@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