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무승부 징크스에서 벗어나라'
허정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이 7일(한국시간) 오후 11시30분 요르단 암만 킹 압둘라 스타디움에서 요르단과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축구 아시아지역 3차 예선 4차전을 치르는 가운데 최근 4경기째 이어지고 있는 무승부 행진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을 지 축구팬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대표팀은 지난달 31일 3차전 요르단과 홈 경기에서 두 골을 먼저 넣고도 후반전 7분 동안 내리 추격골과 동점골을 허용하며 다잡은 경기를 놓쳤던 만큼 이번 요르단 원정경기 승리는 필수적이다.

◇더 이상 무승부는 없다
허정무 감독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별명 중 하나는 '무승부 사령탑'이라는 오명이다.

허 감독은 지난 2006년 K-리그 전남 드래곤즈를 이끌면서 정규리그에서 9경기 연속 무승부를 기록했고, 지난 시즌에도 초반 8경기 동안 1승6무1패의 성적을 거둬 '무승부 전문'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말았다.

지난해 12월 대표팀 사령탑을 맡은 허 감독은 사령탑 데뷔전에서 칠레에 뼈 아픈 패배를 당한 뒤 2연승으로 상승세에 오르는 듯 했지만 이후 4경기 연속 무승부의 부진에 빠지면서 '무승부 감독'이라는 팬들의 비아냥을 감수해야만 했다.

이런 상황에서 허 감독은 월드컵 3차 예선 4차전에서 악몽의 상대인 요르단과 원정경기를 통해 실추된 명예를 회복해야 하는 '벼랑 끝 위기'에 놓였다.

하지만 허 감독에게 주어진 조건은 불리하기만 하다.

멀티플레이어 김동진(제니트)이 종아리 부상으로 원정 명단에서 빠지고, 대표팀의 활력소로 떠오른 이청용(FC서울)은 골반 타박상으로 재활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 때문에 팬들은 허정무 감독이 멋진 용병술로 주어진 악조건을 뚫고 무승부 징크스에서 벗어날 수 있을 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승리 공식은 '박지성 시프트'
허정무 감독은 요르단전을 앞두고 "상대도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의식하고 있다.

박지성이 차단당하지 않는 방법을 찾고 있다"며 박지성 활용법에 대한 고민을 숨기지 않았다.

박지성의 장점은 중앙과 측면을 자유롭게 오가면서 뛰어난 돌파력과 정확한 볼 투입으로 동료에게 골 기회를 만들어줄 뿐 아니라 골 결정력까지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허 감독은 요르단과 3차전에 박지성을 왼쪽 공격수로 내세웠고, 박지성은 원톱 박주영(FC서울)과 자유롭게 위치를 바꿔가며 측면과 중앙에서 종횡무진 활약했다.

이른바 '박지성 시프트'의 가동이다.

이번 요르단 원정에서 허 감독은 박지성에게 처진 스트라이커 겸 공격형 미드필더 역할을 맡겼다.

요르단의 밀집수비를 뚫기 위해선 발 빠른 공격수들이 필요한 만큼 스피드와 득점력을 갖춘 이근호(대구)가 왼쪽 측면에서 공격의 활로를 찾고, 박지성은 좌우 측면 공격수와 수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상대 수비를 교란해 골 찬스를 만들어 내겠다는 전술이다.

◇설기현-이영표 '부활의 노래'
허정무 감독과 더불어 명예회복을 고대하는 선수들이 있다.

바로 설기현(풀럼)과 이영표(토트넘)다.

설기현과 이영표는 지난달 28일 고양 국민은행과 연습경기에서 눈에 띄는 부진으로 심한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고, 후배들에게 밀려 '벤치신세'로 밀려날 위기를 맞고 말았다.

컨디션 조절 실패로 몸이 무거웠던 설기현은 대표팀 막내급인 이청용(FC서울)에게 밀려 그라운드를 밟지 못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거의 자존심이 무너지고 만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요르단 원정에 오른 설기현과 이영표는 내공이 쌓인 대표 선수로서 주변의 안타까운 시선을 견뎌내고 묵묵히 컨디션을 끌어올리는데 주력했다.

두 해외파 선수의 회복과정을 유심히 지켜봐 온 허 감독은 이영표에게 요르단과 4차전을 맞아 수비조율 역할을 맡기고, 이청용이 부상으로 빠진 공백을 설기현의 몫으로 돌리는 모험을 단행했다.

승리에 목마른 허 감독의 결단에 설기현과 이영표가 팀 승리로 보답할지 지켜볼 일이다.

(암만<요르단>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