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매치 135회 출전에 9골, 월드컵 연속 4차례 출전, 국제축구연맹(FIFA)이 선정한 현존하는 세계 100대 스타'

한국 축구선수 가운데 이처럼 어마어마한 기록을 보유한 이는 과연 누구일까.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39) 올림픽축구대표팀 코치 얘기다.

1990년대 한국축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지만 그가 뛰어보지 못한 대회가 있다.

바로 올림픽이다.

2000년 시드니대회 당시 와일드카드로 현지까지 날아갔지만 조별리그 첫 경기 직전 장딴지 부상으로 강철과 긴급 교체돼 귀국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8일 오후 종로구 신문로 성곡미술관 찻집에서 만난 홍명보 코치는 첫 올림픽 출전에 대해 "세계 스포츠인의 축제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이 즐겁다. 벤치에 앉게 되지만 한 번도 참가한 적이 없어 개인적으로 기쁘다"고 소감을 전했다.

올림픽 얘기를 꺼내자 2000년 기억을 떠올렸다.

"부상 때문에 최종엔트리 제출 전날 바뀌었습니다. 허정무 감독님이나 정해성 코치님에게 미안한 마음 뿐이었습니다. 부담이 많았습니다. 컨디션은 좋았지만 대표팀에 들어오면서 책임감과 스트레스 때문에 예민해지다 보니까 부상이 왔던 것 같습니다. "

이번에 와일드카드로 뽑힐 선수들에 대한 걱정도 당연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가져야 하는 부담일 수도 있지만 그들이 팀에 융화될 수 있는 분위기를 코칭스태프가 대화로 만들어줘야 한다"고 했다.

베이징에서 기대하는 성적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홍 코치는 "이전 대회가 기준이다. 최소한 8강은 가야하지 않겠나. 지난달 조 추첨식에서 네덜란드,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피하고 싶었는데 바람대로 됐다. 조별리그 통과가 급선무"라고 밝혔다.

한국은 카메룬, 이탈리아, 온두라스와 차례로 조별리그를 치르는데 결코 쉽지 않다.

이에 대해 홍 코치는 "이제 월드컵이든 올림픽이든 강팀하고 붙을 수 밖에 없다. 다만 남미 팀 가운데 브라질 대신 온두라스가 뽑힌 것이 다행이다. 박성화 감독님도 온두라스 때문에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있는 것 같다. 첫 판 상대인 카메룬을 잡는게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홍 코치는 현 대표팀의 약점과 보완할 점도 지적했다.

"좋은 포지션에서 볼을 연결시킬 수 있는 훈련을 많이 해야 한다. 패스 미스나 볼을 빼앗기는 경우 나오는 쓸데 없는 체력 소모를 방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올림픽 대표팀에 오기까지 홍 코치는 3명의 감독을 모셨다.

2004년 미국 프로축구(MLS) LA갤럭시에서 은퇴한 이후 행정가로 변신을 모색하던 홍 코치는 계획과 달리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독일월드컵을 앞둔 2005년 9월 딕 아드보카트 감독이 부임하면서 코치로 지목됐고, 아드보카트 이후 지휘봉을 잡은 핌 베어벡 밑에서도 일했다.

베어벡이 사임하고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을 맡은 이후 성인-올림픽 대표팀 체제가 이원화되자 홍 코치는 올림픽 대표팀 사령탑에 앉은 박성화 감독을 보좌하게 됐다.

외국인 감독과 지내다 한국인 감독이 온 뒤 어려웠던 점이 있었느냐고 묻자 오히려 박 감독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했다.

홍 코치는 "박 감독님이 더 힘들었다. 베어벡에 길들여져 있던 선수들을 파악하기도 어려웠고 성적을 내야 하는 최종예선이 코 앞에 닥친 데다 합숙을 오래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때가 가장 어려운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지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본선 진출 확정한 날 선수들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한 것이다.

어쨌든 목적은 달성했는데 나까지 축하의 말을 못해준 것이 마음에 걸린다.

골이 안 터지는 등 인상깊지 못한 경기력에 대한 자성 분위기에 나도 휩싸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올림픽 끝나면 K-리그 감독 데뷔(?)

오는 8월 이후 진로가 궁금했다.

베어벡 체제였다면 모르겠지만 올림픽이 끝나면 성인 대표팀에 끼어들 틈은 이제 없다.

홍 코치는 "가능성은 모두 열어두고 있지만 남들이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하고 싶다"고 했다.

주위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는 홍 코치의 미래는 무얼까.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이 내년 K-리그에서 감독으로 데뷔한다는 것이다.

일단 동기 황선홍이 부산 아이파크 감독이 된 것에 대해 심정을 물어봤다.

시기가 미묘했다.

베어벡 사임 이후 올림픽 대표팀 감독 후보로 거론되던 홍 코치는 그대로 코치로 남았고, 박성화 감독이 빠져나온 부산 사령탑 자리를 황 감독이 메웠던 것.

홍 코치는 "지금까지는 비슷한 연배 가운데 항상 앞에서 달려왔다. 하지만 감독은 제일 먼저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황)선홍이가 감독이 됐을 때 젊은 사령탑이 생겼다는 점에서 기뻤다. 나보다 먼저 감독을 했기 때문에 자존심이 상했다거나 질투가 생긴 것은 절대 없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감독직에 대한 제의가 들어왔을 경우를 묻자 "고민은 할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얘기하는 건데 욕심은 전혀 없다. 대표팀에서 많이 배웠고 충분히 해낼 수 있지만 내년에 K-리그 감독이 될 확률은 현재로선 '제로'"라고 못을 박았다.

이어 "현장에서 빠져나와 여유를 갖고 내 자신을 가다듬을 계획이다. 구체적인 것은 없지만 장학재단 돌보는 일에 시간을 할애할 예정이다. 영어공부도 더 해야 하고 대학에서 강의 요청도 많이 들어왔는데 그런 일도 해보고 싶다"며 "내 나이가 벌써 마흔이다. 중요한 시점이다. 지금까지도 잘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날이 더 중요하니까 여러가지 준비를 잘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 홍명보장학재단 '가장 소중한 사업'


올림픽 이후 홍명보 코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장학재단 운영에 힘을 쏟을 예정이다.

홍 코치는 이 장학재단에 대해 "지금까지 한 일 가운데 가장 소중하게 아끼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장학재단의 시작은 1997년이다.

포항 스틸러스에서 일본 J-리그 벨마레 히라츠카로 이적할 당시 이적료가 발생하자 포항 구단이 격려금 차원으로 5천만원을 줬는데 홍 코치는 이 돈을 구단에 일임하고 장학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불우한 축구 꿈나무 10명을 선정해 장학금을 줬다.

2002년 한.일월드컵이 끝난 뒤 홍 코치는 대구에서 '홍명보장학재단'을 설립했고 6년 째 이어가고 있다.

매년 장학생 30명을 선발해 1년에 100만원씩 지원을 하고 있고, 연말에 열리는 자선축구를 5차례 치러 9억원을 소아암 환자 치료를 위한 성금으로 내놓았다.

하지만 이런 순조로운 것만은 아니다.

지난해 자선축구를 개최할 때는 스폰서 부족으로 사업을 접을 생각도 했던 홍 코치였다.

그는 "의욕적으로 시작했고 한국 스포츠에서 자선 경기는 처음이었다. 겨울이라 관중이 많이 오시지 않는게 가장 아쉽다. 이를 축구 경기로 보면 안되고 하나의 봉사활동이라고 봐야 한다"며 "올해는 준비를 더 철저히 할 계획이다. 중요한 것은 운동선수도 사회에 공헌한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좋은 환경에서 하면 좋겠지만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꾸준히 계속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장학생 얘기도 덧붙였다.

그는 "지금은 30명을 돕고 있는데 100명 정도로 키울 계획이 있다. 초.중.고 연맹에 추천을 부탁해 장학생을 선발하는데 선정 작업이 너무 힘들고 안타깝다. 주민등록등본만 떼어보면 어떻게 사는 지를 알 수 있는데 어려운 선수가 너무 많다. 떨어진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현재는 조금만 도와주면 훌륭한 선수로 클 수 있는 아이를 선정하려 하는데 지도자나 스카우터로부터 선정에 있어 얘기를 듣고 있다"고 말했다.

◇ 후배들아, 견문을 넓혀라!


가장 모범적인 길을 걷고 있는 축구 선수 출신 가운데 한 명인 홍명보 코치는 후배들에게도 할 말이 많았다.

홍 코치는 "많은 경험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라"고 조언했다.

"나 역시 그랬지만 프로 선수는 운동하고 숙소에서 생활합니다. 훈련이 없는 겨울에는 술을 마시는게 스트레스를 푸는 유일한 방법이었죠. 하지만 일본에 진출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19살 짜리 선수가 휴가를 가는데 배낭을 메고 유럽에 여행을 간다고 했습니다.

우리로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하는 것이었죠. 새로운 것을 접하면서 좁은 곳에 매여있지 않고 넓은 곳을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축구만 하다가 사회에 나오는 것보다 훨씬 도움이 됩니다.

요새 프로 선수는 금전적으로 여유도 있으니까 유럽 배낭여행하면서 축구도 보고 오고... 얼마나 좋습니까"

그는 또 "술 마시는 것은 한국 축구선수들에게 있어서 옛날부터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버릇 같은 것"이라며 "젊었을 때는 술 마셔도 바로 회복하니까 문제가 없지만 버릇이 들어 나이를 먹고서도 이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유흥에 빠질 시간에 취미를 찾고 자기 계발을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재미를 붙이라고 당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민 기자 min76@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