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정무호(號)가 적지에서 짜릿한 승리와 더불어 미완의 대기들을 실전에 응용하며 '알찬 실험'을 하는 수확도 거둬들였다.

허정무 축구대표팀 감독은 17일 중국 충칭에서 열린 2008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중국과 개막전에서 예고했던대로 스리백(3-back) 전형을 펼쳐보였다.

그러나 이날 3-4-3 전형은 지난달 30일 칠레와 데뷔전에서 나왔던 3-5-2 시스템과는 약간 달랐다.

허정무호 포메이션은 '3-5-2(칠레전 전반)'→'4-4-2(칠레전 후반)'→'4-3-3(6일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다시 3-4-3으로 바뀌면서 변화무쌍한 색깔 바꾸기를 시도하는 양상이다.

예상을 뒤집은 노림수도 있었다.

당초엔 중원에 김남일(빗셀고베)을 축으로 오장은(울산)을 예상했지만 허 감독은 원래 대표팀에선 사이드 요원으로 뛰어온 조원희(수원)를 김남일의 짝으로 투입했다.

아드보카트호부터 오른쪽 측면에만 섰던 조원희의 투입은 의외였다.

김남일-조원희 카드는 결정적인 패스를 찔러주진 못했지만 2선에서 안정감을 보였다.

조원희는 소속팀 수원에서 김남일이 J-리그로 이적하기 전 종종 호흡을 맞췄고 K-리그에서 이 대목을 눈여겨본 허 감독이 새 전형을 꺼내든 셈이다.

이어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내세웠던 조용형(제주)을 중앙 수비수로 세웠다.

조용형은 전반 36분 왼쪽 측면이 완전히 허물어지면서 올라온 예리한 크로스를 문전 쇄도한 공격수에 한 발 앞서 걷어내면서 수비라인의 버팀목 역할을 해냈다.

허정무호는 공격 전개과정에서 예전과는 달리 매끄러운 움직임도 보여줬다.

전반 33분 이근호(대구)에서 시작돼 조원희, 이종민(울산), 박주영, 박원재(포항)으로 다섯 번이나 연결된 패스워크는 오른쪽 측면에서 골지역 왼쪽까지 50m를 종횡으로 오가며 중국 수비진의 혼을 뺐다.

박원재의 마무리가 둔탁해 비록 골이 되진 않았지만 전술 훈련 때와 가장 비슷하게 만들어낸 허정무호의 작품이었다.

전반 박주영(서울)의 골로 앞서가던 대표팀이 후반 초반 저우하이빈, 류젠의 연속골에 1-2로 역전을 당하면서 패배 위기에 몰렸지만 허정무 감독의 전술 실험은 중단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가 19세 신예 구자철(제주)를 투입한 것이었다.

허정무 감독은 처음 충칭에 도착한 날부터 취재진에게 "구자철을 지켜봐오지 않았느냐"며 선발 또는 조커로 기용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막상 경기 흐름이 불리하게 흘러가던 상황에서 A매치 경험도 없는 신출내기를 쓰기란 쉽지 않다.

허정무 감독은 구자철을 공격형 미드필더로 세우고 박주영, 이근호 투톱 체제를 가동했다.

허 감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선 "오른쪽이 자꾸 뚫려서 수비 강화 차원에서 구자철을 내세웠다"고 설명했다.

어쨌든 허정무호의 최연소 새내기 구자철은 성공적으로 데뷔전을 치렀다.

장신(187㎝) 고기구(전남)를 교체 투입한 것도 막판 공세에 힘을 보탰다.

고기구가 골에 관여하지 못했지만 '골넣는 수비수' 곽태휘(전남)가 결승골을 터트릴 수 있도록 중국 수비진을 분산시키는 효과를 냈다.

허정무호는 그러나 후반 초반 중국의 파상 공세에 심하게 흔들리는 등 수비 불안이란 숙제를 노출했다.

허 감독도 "세트 플레이에서 실점한 건 분명히 숙제로 남았다"며 중국의 거친 세트플레이에 두 번이나 당한 수비진의 문제점을 자체적으로 지적했다.

(서울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