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발 스페셜리스트' 염기훈(24.전북)이 다시 빛을 발했다.

11일 오후(한국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글로라 붕카르노 경기장에서 열린 한국 축구대표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207 아시안컵축구 조별리그 D조 1차전.

찌는 듯한 더위와 질퍽한 그라운드 탓에 득점없는 공방이 더욱 지루하게 느껴지던 후반 21분 염기훈은 미드필드 왼쪽에서 볼을 잡았다.

골문 앞에 조재진(시미즈)과 최성국(성남)이 수비수를 한 명 씩 달고 있던 상황.
염기훈은 조재진이 왼쪽으로 치고 나오며 최성국과 틈을 벌리자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페널티박스 왼쪽 구석 부근까지 볼을 몰던 염기훈은 조재진과 최성국의 사이에 생긴 공간에 뚝 떨어지는 정확한 크로스를 올렸고, 날카롭게 휘어지며 날아간 볼은 그대로 최성국의 이마에 맞더니 골문을 파고 들었다.

왼쪽 공격수로 선발 출격해 시종 활발한 돌파로 사우디 좌측을 공략하던 염기훈의 왼발이 선제골을 배달한 순간이었다.

염기훈은 이날 최성국에게 올려준 어시스트 외에도 몇 차례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엔드라인 부근에서 수비수를 젖히는 속임 동작은 물론 볼의 강약과 높낮이를 조절하는 능력까지 모자람이 없었다.

다만 막힌다 싶었을 땐 자신이 직접 해결하려는 과감함도 보여줬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지난해 호남대를 졸업하고 전북에 입단한 염기훈은 왼쪽 측면에서 팀의 화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며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주도하고 K-리그 신인왕을 거머쥐며 핌 베어벡 감독의 눈을 사로잡았다.

같은 해 10월 가나와 평가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른 염기훈은 이날까지 국가대항전 출전이 7경기 밖에 되지 않은 신예 태극전사.
하지만 염기훈은 지난달 29일 제주도에서 열린 이라크와 평가전 때 왼발로 선제골을 터트린 데 이어 이날도 왼발로 '컴퓨터' 크로스를 선보이며 베어벡호의 왼쪽 주전 공격수로 확실히 자리매김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박주영(FC서울) 등 그동안 왼쪽에서 활약하던 공격수들이 베어벡호에 승선하지 못한 가운데 염기훈의 왼발이 가시밭길을 가야 할 베어벡호에 희망을 심어줄 지 주목된다.

(자카르타연합뉴스) 이영호 기자 horn9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