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에도, 그라운드에도 리더가 없었다'

출범과 함께 한국 축구 중장기 발전 계획의 첫 단계로 2006 도하아시안게임 우승을 이야기했던 베어벡호가 빈 손으로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이라크와 준결승에서 일격을 당한 한국 남자 축구대표팀은 15일(이하 한국시간) 끝난 이란과 동메달결정전에서도 연장 승부 끝에 0-1로 패해 '노메달'에 그쳤다.

베어벡호는 대회를 앞두고 대표 차출 문제로 프로축구 K-리그와 잡음을 빚었고, 선수들은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는 강행군 속에 일찌감치 지친 듯 제 기량을 펼치지 못하고 시종 무기력하게 주저앉았다.

당장 핌 베어벡 감독의 리더십이 치명타를 입은 게 걱정이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이번 대표팀의 경우 외적으로 전력을 극대화하기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서도 "하지만 감독의 선택에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입을 열었다.

그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열세인 팀과 맞붙을 경우 예상되는 상대의 전략에 효과적인 대처가 미흡했다"면서 "일례로 베어벡 감독은 모든 경기를 수비형 미드필더를 2명을 두고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려 했다.

하지만 계속 경기를 주도하는 상황이라면 미드필더진 운용에 있어 적절한 변화를 줬어야 하는데 결정을 내리는 데 너무 신중했던 것 같다"고 평가했다.

박 위원은 또 "전원 프로 선수로 구성된 대표팀의 정신적 해이에 대한 일각의 지적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 "정신력은 곧 동기 부여에서 나온다.

병역특례라는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된 선수들인데 그들의 기량이 실제 전력으로 이어지지 못했다면 이는 벤치의 리더십 부족 때문으로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라운드 내에서도 구심점 부재는 이번 대회 내내 답답함을 더해준 원인 중 하나다.

23세 이하가 주축인 된 가운데 와일드 카드로 3명이 합류했지만 경기 흐름에 따라 팀을 효과적으로 결집할 만한 '필드의 사령관'은 없었다.

김동진(제니트)과 김두현(성남)은 부상으로 제 역할을 해 줄 기회가 적었고, 최고 선임이자 주장인 이천수(울산)도 팀의 응집력을 살리기에는 역부족을 드러냈다.

대표팀은 이라크와 준결승에서는 전반 24분 선제골을 내준 뒤로 경기를 의도적으로 지연시키려는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 시간에 쫓기며 우왕좌왕하다 결국 무릎 꿇었다.

의욕이 한풀 꺾인 뒤 이란전에서는 쓸데없는 반칙으로 120분 동안 6명이나 경고를 받는 등 감정이 실린 거친 플레이가 이어졌지만 누구 하나 팀을 추스르지 못했다.

한국 축구는 내년 2월부터 시작되는 2008 베이징올림픽 예선, 그리고 7월 아시안컵 본선 등 새로운 과제가 줄줄이 앞에 놓여 있다.

올림픽대표팀과 A대표팀을 총 지휘하고 있는 베어벡 감독으로서는 이번 아시안게임의 기대 이하 성적으로 향후 대표팀 운영 및 전술 운용에 적지않은 부담을 안게 됐다.

(도하=연합뉴스)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