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대회 잇따라 최악 성적표 '참담한 몰락'

도무지 앞이 보이지 않는다.

하계올림픽에서 두 차례나 월계관을 쓰고 세계 최고 전통의 보스턴마라톤까지 제패하며 아시아 최강국의 자존심을 지켜온 한국 마라톤이 좌표를 잃은 채 표류하고 있다.

1970-80년대에도 한동안 침체기가 있었지만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제패 이후 찾아온 제2의 침체기는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고 암울하다.

10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코니시 해안코스에서 열린 남자 마라톤에서 지영준(코오롱)과 김이용(국민체육진흥공단)이 메달권에 근접하지도 못한 7위와 14위로 골인한 뒤 현장을 지키던 육상인들은 할 말을 잃었다.

한국 마라톤은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황영조의 우승과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이봉주의 은메달, 2001년 이봉주의 보스턴마라톤 우승으로 일제 치하부터 시작된 면면한 전통을 이어왔다.

2000년대에도 이봉주가 2시간7분20초로 한국기록을 세웠고 각종 국제대회에서 그래도 입상권을 바라보는 성적표로 가능성을 엿봤다.

마라톤계에서는 '포스트 이봉주' 세대의 자원이 부족할뿐 금방 침체에서 벗어날 걸로 안도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봉주가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 사실상 마지막으로 종합대회를 뛰고 지영준이 17위에 그친 다음 작년 헬싱키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한국이 받아든 성적표는 50위권밖으로 사상 최악이었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그나마 아시아권 경쟁인데다 출전 인원도 22명에 불과해 내심 금메달을 바라보며 최소한 메달권에는 진입할 걸로 희망을 걸었다.

그렇지만 아프리카세를 앞세운 중동 산유국과 일본은 물론 남자 마라톤이 약하다는 중국에도 밀리며 몰락하고 말았다.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극도로 취약해진 선수층이 한국 마라톤의 현실을 반증한다.

42.195㎞를 쉼없이 달려야 하는 마라톤은 어느 때부터 대표적인 '3D 종목'으로 치부되면서 동호인 마라톤의 열풍과는 거꾸로 엘리트 마라톤의 경우 선수를 찾기가 힘들 정도로 '씨'가 말랐다.

생애 35번째 완주를 한 이봉주가 올해 국내 최고기록을 세웠을 정도이니 빈약한 선수층의 두께를 알아볼만 하다.

또 상당수 선수가 전국체전에 안주하고 있는 분위기도 발목을 잡고 있다.

육상인들은 마라토너 한 명을 잘 키워놓더라도 나중엔 결국 지자체팀으로 가서 체전 성적에 만족하는 경향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체전에만 나가도 선수 생활을 영위할 수 있으니까 구태여 힘든 고지훈련 등을 소화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마라톤의 후진적인 지도 시스템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마라톤은 아직도 일정한 거리를 반복해서 달리는 '거리주 훈련'에 집착하고 있다.

윤여춘 MBC 육상 해설위원은 "오늘 레이스에서도 드러났지만 지구력도 스피드를 동반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마라톤의 구간 기록의 기초인 5,000m부터 시작해 스피드 훈련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하=연합뉴스)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