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하던대로 하는거야.'

프로축구 성남 일화의 김학범(46) 감독은 어떤 경기를 앞두고 있든 항상 이렇게 말한다.

이 한 마디는 색깔도 없고 지극히 평범해 보이지만 올 시즌 성남의 K-리그 우승을 만들어낸 원동력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성남은 25일 '호화군단' 수원 삼성의 거센 도전을 뿌리치고 3년 만에 정상을 탈환, 가슴에 일곱 번째 '우승 별'을 달았다.

성남을 최다 우승팀(7회)으로 만들어낸 힘은 '리그 최고의 분석통'으로 꼽히는 김학범 감독의 컴퓨터 지략과 코칭스태프가 선수들에게 '흐름을 읽고 경기 자체를 즐길 것을 주문하는' 안정된 팀 컬러, 그리고 이질적인 선수들이 어렵사리 이뤄낸 '융합'으로 볼 수 있다.

김 감독은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대표팀 코치를 지내긴 했지만 국가대표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아마추어팀 국민은행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고 현역을 떠난 뒤 잠시 은행 지점에도 근무했던 '샐러리맨 출신 사령탑'이다.

명장 보비 롭슨 감독의 통역으로 시작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선장이 된 포르투갈 출신 조제 무리뉴 감독과도 이력 면에선 종종 비교된다.

김 감독은 화려한 현역 시절과 지도자 경력을 등에 업고 리그에 안착한 다른 감독들과 달리 끊임없이 공부하는 지도자로 자신을 연마해왔다.

올해 명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아 '박사 사령탑'이 됐다.

그의 지도 철학은 독특하다.

"죽으라고 뛰면 힘만 들지 그렇다고 경기가 풀리는 게 아니다.

프로 선수가 조기축구회 경기에 뛰면 힘 하나 들이지 않고 볼을 툭툭 차면서도 경기를 리드할 수 있다.

왜 그럴 수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라."
김 감독은 시즌 내내 선수들에게 '흐름'을 읽을 것을 주문했다.

훈련장에서도 누가 술래인지 모르는, 다소 이상한 패싱게임으로 선수들에게 볼의 흐름을 읽는 '눈'을 길러줬다.

그리곤 곧바로 '안정책'을 썼다.

1998년 9월부터 성남에서 줄곧 코치 생활을 해 선수들의 속마음까지 읽어내는 '맏형 리더십'이 큰 힘이 됐다.

성남은 K-리그 14개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시즌 초반의 포백(4-back) 라인을 챔피언 결정전까지 단 한 차례로 바꾸지 않고 일관되게 배치했다.

전문가들은 '성남의 포백이 양날의 칼처럼 최대 장점이자 허점인 일정한 간격 유지에서 가장 탁월한 능력을 보여줬다'는 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간혹 전략전 변형을 시도하긴 하지만 베스트 라인업의 골격을 이리저리 바꾸진 않았다.

'감독은 골조만 세울뿐 볼은 선수들이 차는 것'이라는 김 감독의 지도 철학이 그대로 투영됐다.

성남은 전기리그에서 압도적인 성적표로 우승한 다음 후기리그에서 오는 '후유증'을 최소화했다.

2004년과 2005년 포항과 부산이 전기 우승 이후 후반기에서 추락한 뒤 챔피언과 멀어져갔다는 점을 곱씹어보면 성남의 행보는 대조적이었다.

전.후기 통합 우승을 노리다 후반기엔 9위로 마감했지만 비교적 안정된 전력을 구축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초겨울 잔치'에서 팀 전력이 하강곡선을 그리는 것을 미리 막을 수 있었다.

'돌아온 득점왕'인 삼바 용병 모따는 포르투갈 리그로 나갔다 유턴했고 이따마르와 네아가는 이적생이다.

조병국, 김용대도 수원, 부산에서 데려와 새롭게 꽃을 피웠다.

복합골절로 수차례 수술을 받고 넉 달 넘도록 쉰 모따가 플레이오프부터 제 모습으로 돌아와 챔피언 결정 2차전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친 것과 대표팀에서 자책골 악몽에 시달리다 곧바로 이어진 부상으로 긴 슬럼프에 빠졌던 중앙 수비수 조병국이 완벽하게 부활한 대목이 올 시즌 성남 이적생들의 '성공적 융합'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수원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