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불펜을 앞세운 삼성라이온즈가 아시아 야구 최강국 결정전인 코나미컵 아시아시리즈에서 두 번째 도전 만에 우승에 도전했지만 11일 '난적' 대만의 라뉴 베어스를 넘지 못하고 3위에 그쳤다.

선동열 삼성 감독의 예상처럼 3점 승부였지만 승자는 라뉴쪽이었다.

삼성은 3전 전패로 탈락한 중국과 함께 상금 1천만엔(8천만원)을 받는 데 그쳤다.

한국시리즈에서도 답답한 타선 탓에 비교적 쉬운 상대로 여겨졌던 한화에 3번의 연장 승부를 치른 끝에 4승1무1패로 어렵사리 우승을 차지했던 삼성은 그러나 국제 대회에서는 장단점을 확실하게 파악하지 못한 탓에 라뉴에 1점차로 패배, 결승에 조차 이르지 못했다.

'설마'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난 것인데 한국시리즈 못지 않게 비장한 각오로 이 경기에 나섰던 삼성 선수단은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2년 연속 한국챔피언이라는 명예도 이날 패배로 상당 부문 퇴색될 전망.
패인은 여러 가지다.

지난해에 비해 한국시리즈가 늦게 끝나면서 상대팀 전력의 장단점을 분석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다.

실제 삼성 선수단은 10월29일 한국시리즈가 끝난 후 불과 이틀을 쉬었고 닷새 간 실전 한 번 치르지 않고 일본으로 건너왔다.

라뉴에 대한 비디오 전력 분석 작업은 촉박하게 이뤄졌고 11일 오후 1시에서야 전체 선수단이 비디오를 볼 수 있었다.

노장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삼성 타선이 피로 누적으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점도 있다.

지난해에는 한국시리즈 후 열흘 이상 휴식과 훈련을 병행할 수 있는 시간이 있었지만 올해는 사실상 한국시리즈가 아시아시리즈 연습 경기였을 정도로 강행군을 펼쳤다.

하지만 역시 상대를 압도할 수 있는 슬러거가 없다는 게 최대 약점이었다.

왼 어깨와 오른 무릎 수술 후 이제 컨디션 회복 중인 심정수는 주포의 몫을 거의 해내지 못했고 양준혁도 라뉴전에서 선제 투런포를 터뜨리기는 했으나 전날까지 7타수 무안타로 부진을 거듭했다.

부상에서 돌아온 김한수, 진갑용 등이 분전했지만 한 방을 기대할만한 타자는 아니었다.

소총 부대의 명성도 딱총부대로 전락했다.

일본 챔피언 니혼햄 파이터스를 상대로는 3안타로 체면을 완전히 구겼고 라뉴전에서도 6안타에 그쳤다.

선 감독은 대만의 좌완 선발 투수 우스요우를 겨냥해 양준혁을 3번에서 6번으로 내리고 박진만을 올리는 필승 라인업까지 짰지만 자주 끊기는 공격의 흐름을 막지는 못했다.

슬러거도 없었으며 깜짝 활약을 기대할 히든 카드도, 타선의 응집력도 없었다.

상대 전력 분석이 완전히 끝난 한국시리즈에서는 통했지만 전혀 모르는 라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이는 곧 선동열 감독이 주창하는 '지키는 야구'의 한계이기도 하다.

'지키는 야구'는 5회 이전까지 상대방을 리드하고 있어야 위용을 떨칠 수 있는 방어적인 야구다.

워낙 물타선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마운드 운용이었다.

삼성의 야구는 경기 후반에 전세를 뒤집는 힘을 잃었고 이는 스포츠의 감동과 의외성을 앗아가면서 '재미없는 야구'가 됐고 언제 어떤 투수가 등판할 지 모두가 다 아는 '공식 야구'가 되고 말았다.

선 감독도 이런 부문을 시즌 내내 우려했고 결국 한국시리즈 후 "트레이드를 통해 야구 1-2명을 보강, 노쇠화한 타선을 바꾸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제야 1년 농사를 모두 마친 삼성은 휴식을 취하면서 내년 시즌 전력 정비 작업을 발 빠르게 시작할 예정이다.

(도쿄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