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타를 휘두르며 한국과 일본 양국 야구팬의 이목을 한데 사로잡았던 이승엽(30.요미우리 자이언츠)이 19일 한신 타이거스전을 끝으로 전반기를 마감했다.

한신전에서 고대했던 30번째 홈런은 터뜨리지 못했으나 이승엽은 이날까지 홈런 29방을 쏘아올려 양 리그 통틀어 이 부문 부동의 1위를 질주했다.

아쉽게도 이날 고시엔구장에서 아치를 그리지 못해 센트럴리그 전(全) 구장 홈런은 후반기로 기약해야했다.

센트럴리그 타격 3위(0.323), 최다안타 2위(109개), 타점 4위(64개), 장타율 2위(0.638), 득점 1위(70개)에 오르며 일본 진출 3년만에 사실상 일본 야구를 평정했다.

지난 2년간 활약했던 퍼시픽리그 지바 롯데 마린스를 떠나 일본 최고 명문구단 센트럴리그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새 둥지를 튼 이승엽은 이적하자마자 거인군 역사상 70번째 4번타자로 낙점됐고 그 임무를 120% 이상 수행하며 단숨에 일본 최정상급 타자로 발돋움했다.

지난 3월 사상 처음으로 벌어진 야구 국가대항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 홈런(5개), 타점(10개)로 1위에 올라 방망이 실력을 세계적으로 인정 받은 이승엽은 3월31일 요코하마와 시즌 개막전에서 1회 결승 2타점 중전 적시타를 터뜨리며 요미우리에 성공적으로 데뷔했다.

득점권 타율도 0.320에 달해 찬스에서도 해결사 몫을 충분히 해냈다.

한일 통산 400홈런에도 3개차로 다가선 이승엽이 전반기에 남긴 족적은 화려함 그 자체였다.

◇정교함과 파워를 두루 갖춘 완벽한 타자
'아시아 홈런왕', '아시아 거포' 등 홈런에 대한 칭찬 일색이던 수식어는 이제 정교함까지 겸비한 '완벽한 타자'로 바뀌어야할 판이다.

이승엽은 파워와 정확함을 두루 갖춘 가장 이상적인 타자로 진화했다.

87게임에서 29발의 대포를 발사한 이승엽은 50홈런 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진출 후 지난해 때린 30방이 최고였고 일본 진출 첫 해에는 14방에 그쳤다.

부드러운 스윙에 겨우내 웨이트트레이닝으로 기른 파워를 가미, '걸리면 넘어가는' 대포쇼를 벌이고 있다.

홈런 평균 비거리는 120m. 일본 11개 구단을 상대로 모두 홈런을 터뜨렸다.

가장 눈에 띄는 건 타율. 2004년 0.240, 지난해 0.260을 때렸던 이승엽은 올해 좌우 스트라이크존이 더 넓고 볼 배합이 까다롭다는 센트럴리그의 투수들을 상대로 3할의 고타율 행진을 벌이며 급성장했다.

우치다 준조 타격코치의 조언에 따라 바깥쪽 공을 밀어치는 능력이 탁월해졌다.

지난 4월 중순부터 약 3주간 짧은 슬럼프를 겪었을 뿐 이승엽은 기복 없는 타격으로 게임마다 안타와 홈런을 양산했다.

요미우리가 최악의 10연패, 9연패에 빠졌을 때도 "오로지 볼 것은 이승엽 밖에 없다"는 말이 나돌았을 정도로 그는 고군분투했다.

이승엽은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는 원동력으로 "하라 다쓰노리 감독의 변함없는 신뢰로 꾸준히 출장하게 된 것"을 꼽았다.

지바 롯데 시절 좌투수가 나오면 벤치를 지키는 '플래툰시스템'의 희생양으로 전락했던 이승엽은 연봉은 적게 받더라도 꾸준히 출장할 수 있는 요미우리를 새 팀으로 택했고 바람대로 좌우투수에 구애 받지 않고 그라운드를 누비면서 좌투수 적응력을 키웠다.

그 결과 우투수(0.316)보다 좌투수(0.344) 공을 더 잘 때리는 타자로 성장했다.

그는 이미 타구의 방향과 투수의 스타일에 있어 좌우 구분을 넘어섰다.

◇메이저리그냐 요미우리 잔류냐
이런 맹활약 속에 요미우리와 1년 계약한 그가 시즌 후 어떤 행보를 보일지 벌써부터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미국 야후 스포츠의 칼럼니스트 제프 파산은 이승엽이 3년간 2천100만 달러를 받을 만한 재목이라고 평가했다.

이미 메이저리그에서 최상급 에이전트로 꼽히는 SFX의 얀 텔름과 미국 진출을 타진 중인 가운데 또 한 명의 큰손 스캇 보라스도 이승엽에게 군침을 흘리고 있는 형국.
3년간 2천100만 달러는 마쓰이 히데키(뉴욕 양키스)가 미국땅을 처음 밟을 때 받은 금액으로 이승엽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요미우리도 눈 앞에서 이승엽을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 와타나베 쓰네오 요미우리 회장은 이미 이승엽이 최고의 타격감을 과시하던 4월초 그를 시즌 후 붙잡을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이승엽은 최근 한국언론과 인터뷰에서 "일본에서 계속 뛴다면 요미우리에 남고 싶다"며 요미우리와 메이저리그 진출을 동일한 위치에 놓고 저울질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그만큼 일본 최고구단 요미우리가 가져다 주는 명예와 부, 팬들의 관심 등도 이승엽이 놓칠 수 없는 매력포인트다.

일단은 삼성 잔류 대신 더 큰 꿈을 위해 일본을 택했듯 일본 야구를 정복한 이승엽이 또 다른 큰 포부를 펼치기 위해 원래 목표대로 미국 진출을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이승엽은 그러나 "지난 2003년 메이저리그 진출 타진 당시 터무니 없는 금액을 부르는 바람에 상처를 받았다"며 "제 값을 받지 못한다면 무리해서 미국 진출을 노리지는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일본 최고 타자로 입지를 굳힌 이승엽은 현 페이스를 시즌 끝까지만 이어간다면 미국과 일본 양국에서 몸값이 천정부지로 폭등할 확률이 커 올해 말 행복한 고민에 빠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