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 독일 월드컵축구대회가 우승을 다툴 4강 팀만을 남겨 놓은 채 어느덧 종착역으로 치닫고 있다.

이번 월드컵은 지구촌 최대 축구잔치인 만큼 어느 대회 못지 않은 풍성한 이야깃거리를 낳고 있다.

이번 대회 기간 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을 끌어모은 장면들을 몇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인종차별 반대

이번 대회 8강전부터 경기 시작 전 의미 있는 행사가 마련됐다.

양팀 주장이 차례로 자국민을 대표해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는 선언문을 낭독하는 시간이 준비됐다.

미하엘 발라크(독일)도, 지네딘 지단(프랑스)도, 카푸(브라질)도 모두 자국어로 인종차별 반대 선언을 했다.

이어 양 팀 선수와 심판진이 한데 모여 '친구를 만들 시간(A time to make friends)'과 함께 이번 대회 슬로건 중 하나인 '인종차별에 반대한다(Say no to racism)'는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제프 블래터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은 '피파월드컵닷컴'과 인터뷰에서 "우리는 용감한 첫발을 내디뎠다.

우리 모두 축구 대사로서 축구를 발전시켜 왔고 세계를 축구로 하나로 만들었다.

이제 축구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 때"라고 인종차별 반대 의지를 밝혔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도 "스포츠는 정의 실현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으며 인권 강화에도 중추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이번 월드컵의 인종차별 반대 캠페인에 지지를 보냈다.

▲레드카드

이번 대회 시작 전부터 FIFA는 팔꿈치 가격이나 과격한 태클 등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퇴장 명령을 내리겠다고 엄중 경고를 했다.

FIFA의 의지는 그라운드에서 그대로 반영됐다.

8강전까지 60경기를 치른 이번 대회에서 경고는 총 293 차례(한 선수가 같은 경기에서 받은 두 번째 경고는 제외), 퇴장은 27차례나 나왔다.

경기당 평균 경고는 4.88개, 퇴장은 0.45개다.

이는 2002년 한.일 월드컵 64경기에서 272개의 경고와 17개의 퇴장(경기당 평균 4.25개/0.27개) 수를 이미 넘어선 것이다.

경기당 평균 최다 경고(4.52개/총 235개)와 퇴장(0.34개/총 15개)을 기록했던 1994년 미국월드컵 때보다도 훨씬 많다.

레드카드는 비신사적 행위를 한 선수들에게만 해당 된 게 아니었다.

호주-크로아티아의 F조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크로아티아 요시프 시무니치에게 옐로카드 3장을 주는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한 잉글랜드 출신 그레엄 폴 주심은 잔여 경기 배정에서 제외됐다.

1993년부터 독일 대표팀의 A매치 때마다 장내 아나운서로 활동해 온 안드레아스 벤첼 씨는 이번 대회 독일-아르헨티나의 8강전에서 독일에 편파적인 응원을 유도, 레드카드나 다름없는 해고 명령을 받아들었다.

▲팬 페스트


독일이 이번 대회를 준비하면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벤치마킹한 게 있다.

바로 거리 응원이다.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이번 대회 12개 개최도시에 '팬 페스트'라는 이름으로 공식 야외 응원 무대를 만들어 직접 경기장을 찾지 못하는 축구 팬들을 불러모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이미 8강전이 시작되기도 전에 연인원 1천100만명이 거리 응원에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한.일 월드컵 당시 같은 기간 거리응원에 나섰던 연인원 826만 명 보다 25% 가량 늘어난 수치다.

결승전까지 대회 기간 통틀어 800만 명이 참여할 것으로 내다본 FIFA의 예상도 훌쩍 뛰어 넘었다.

▲티켓 전쟁

브라질-프랑스의 8강전이 열린 지난 2일 프랑크푸르트. 이날 오전부터 프랑크푸르트 중앙역에는 '티켓을 구합니다'라고 적힌 작은 종이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부쩍 많이 눈에 띄었다.

심지어 기차가 도착한 플랫폼에서 하차하는 승객들을 대상으로 표를 구하기도 했다.

조별리그 때부터 거리나 경기장 입구에서 표를 구하는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우승팀의 윤곽이 드러나면서 티켓 구하기 전쟁은 점점 더 치열해지고 있다.

이번 대회 준결승전 입장권은 가장 비싼 1등석이 400유로(약 48만 원), 결승전은 600유로(약 72만 원)다.

하지만 결승전 암표 값은 이미 정상 가격의 두 배를 넘어선 한화 150만 원 대를 육박하고 있다.

물론 티켓 전쟁은 한정된 취재석의 한 자리를 뚫고 들어가려는 각국 기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금연

이번 대회 하프타임에는 전광판을 통해 금연 캠페인 영상물이 팬들에게 전달됐다.

독일 대표팀 주장 발라크 등 세계적 스타들이 경기를 앞두고 나란히 서 있는데 어디선가 담배 연기가 날아들어 오자 이들이 얼굴을 찡그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번 대회 전부터 FIFA와 독일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경기장 금연 문제를 둘러싸고 힘겨루기를 했다.

FIFA는 2002년 한.일 월드컵과 마찬가지로 이번 대회에서도 경기장 금연을 요구했다.

하지만 월드컵 조직위원회는 "법률로 경기장 흡연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금연은 관중의 현명한 판단에 맡길 수밖에 없다"고 미적지근한 태도를 취했다.

한.일 월드컵 때는 FIFA와 세계보건기구(WHO)가 모든 경기장에서 금연을 실시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엄격한 금연이 시행됐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는 FIFA의 우려 대로 경기장 내 금연이 잘 지켜지지 않는 모습이다.

심지어 리카르도 라 볼페 멕시코 감독은 경기 중 벤치에서 흡연을 해 FIFA로부터 금연 요청을 받기도 했다.

(프랑크푸르트연합뉴스) 배진남 기자 hosu1@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