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여왕'이 돌아왔다.

한국 여자골프를 세계 정상 수준으로 끌어올린 박세리(29·CJ)가 2년여의 긴 슬럼프를 극복하고 팬들 앞에 다시 섰다.

공교롭게도 1998년 미국 LPGA투어 진출 이후 첫 승을 따내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던 맥도날드LPGA챔피언십에서 다시 우승을 일궈내며 '제2의 전성기'를 예고했다.

박세리는 2년 전 미켈롭울트라오픈에서 우승을 차지,목표로 삼았던 명예의 전당 가입요건을 충족시킨 후 원인모를 부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드라이버샷이 좌우로 빗나가면서 파를 세이브하기 급급해졌다.

교과서같은 스윙은 사라지고 80타를 넘게 치기도 하면서 '주말골퍼'가 됐다는 비아냥까지 들었다.

지난해 13개 대회에 출전한 박세리는 커트탈락 3회,중도 포기 2회 등의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숍라이트클래식 3라운드에서는 13오버파 85타라는 최악의 스코어를 내기도 했다.

2001~2003년까지 3년 연속 상금랭킹 2위에서 지난해엔 상금랭킹 102위까지 수직으로 추락했다.

박세리는 "골프가 싫증났다.

지난 9년간 한 번도 쉬지 않고 골프에만 매달려왔다.

비시즌에도 오로지 골프만 생각했고 쉬는 날에도 오로지 대회와 코스,스윙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심지어 아버지 박준철씨에게 "왜 아빠는 나한테 노는 법은 안 가르쳐 줬느냐"고 눈물을 흘리며 따지기도 했다고 한다.

박세리가 슬럼프에서 벗어난 계기는 엉뚱하게도 '손가락 부상'이었다.

지난해 8월 손가락 부상으로 더 이상 골프채를 잡을 수 없으면서 '골프가 무엇이며,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 알게 됐다'는 것이다.

박세리는 12일(한국시간) 우승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부상당하면서 더 이상 골프채를 잡을 수 없었다.

그러면서 지난날을 돌아볼 수 있게 됐다.

부상이 완쾌된 뒤 나는 다시 골프를 친다는 것이 매우 행복했다.

그리고 정말로 골프를 즐길 수 있게 됐다"고 밝혔다.

박세리는 지난해 말까지 '강제 휴가'를 보내는 동안 바닷가에도 가보고 절을 방문하는 등 마음을 다스리는 데 집중했다.

부상에서 탈출한 후에는 다시 한 번 뼈를 깎는 동계훈련에 들어갔다.

골프 스윙 연습과 체력단련 외에 킥복싱 태권도도 배웠다.

정신력을 강화하기 위해 '무도'를 활용한 것.

흐트러진 스윙은 톰 크리비 코치와 함께 백스윙 톱에서 잠깐 멈췄다가 다운스윙에 들어가는 새로운 스윙을 연마했다.

박세리가 다시 투어에 돌아온 것은 올해 3월.

시즌 초반 페이스가 그리 좋지는 않았지만 지난 4월 진클럽스 앤드 리조트오픈에서 공동 9위에 오르며 2년 만에 '톱10'에 진입,부활의 전주를 알렸다.

이날 웹과 피말리는 연장승부를 펼치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박세리는 "라운드 내내 경기를 즐겼다.

나는 경기 도중 캐디에게 말했다.

우승을 하든 못하든 난 지금의 위치에 행복하다.

경기 도중 어떤 압박감을 느끼진 않는다.

대회에서도 매우 편안함을 느낀다"고 달라진 자신을 설명했다.

한은구 기자 to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