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아드보카트 축구대표팀 감독은 9일(이하 한국시간) LA 갤럭시와 평가전 직전 라커룸에서 태극전사들에게 "오늘 여러분들이 그라운드에서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알 것이다. 나머지는 여러분의 몫이다"고 말했다. 지긋지긋한 'LA 징크스'를 염두에 둔 듯한 말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내린 직후에도 "한국축구가 이 곳에서 성적이 썩 좋지 않다는 걸 알고 있다"며 징크스를 의식했다. 태극전사들은 감독의 이 주문에 화답하는 톱니바퀴 조직력으로 LA 갤럭시를 완전히 압도하며 완벽한 승리로 말끔하게 저주를 풀었다. 1989년 말보로컵 3-4위전에서 미국에 2-1로 이긴 이후 무려 17년 만의 승전보다. '13전14기'의 도전 끝에 이뤄낸 승리다. 지난 5일 미국과 비공개 평가전에서 2-1로 이겼지만 대표팀 전적에 포함되는 공식 경기가 아니라 못내 아쉬움이 남았다. 이날 대승은 비록 대표팀간 A매치는 아니지만 공식 평가전으로 기록된다. 2002년 히딩크호가 연습경기에서 갤럭시에 0-1로 덜미를 잡혀 망신당했던 빚을 세 배로 되갚아줬다. 현지 한인들은 축구대표팀의 무승 징크스를 깨야 한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평일 임에도 5천명이 넘는 대규모 응원부대를 조직해 태극전사들을 목이 터져라 성원했다. 아드보카트호는 마치 홈 같은 경기장에서 더 이상 징크스에 발목 잡히지 않겠다는 결의를 드러내 듯 상대를 완전히 압도했다. LA는 교민이 가장 많은 지역임에도 한국 축구는 유독 LA에서 힘을 쓰지 못했다. 그것도 최근의 일이 아니라 지난 10여년 간 벌써 다섯번째 LA를 찾게 되지만 승리의 기억이 없었다. 1989년 이후 대표팀의 LA 성적표는 13경기 무승(8무5패)으로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징크스의 시작은 1994년 미국월드컵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월드컵 현지 적응 훈련을 겸해 콜롬비아, 미국(2차례)과 친선경기를 가졌지만 콜롬비아와 무승부(2-1), 미국에 1무1패(0-1, 1-1)를 하는데 그쳤다.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을 이끌던 2000년 2월 LA에서 열린 북중미카리브연맹(CONCACAF) 골드컵에서는 캐나다와 0-0, 코스타리카와 2-2로 비겨 승전보를 전하지 못했다. LA에서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든 건 뜻밖에도 히딩크호였다. 2002년 1월 북중미 골드컵에서 미국에 1-2로 진 뒤 약체 쿠바와 득점없이 비겼고 코스타리카에 1-3, 캐나다에 1-2로 패하는 등 세 차례나 쓴 맛을 봤다. 당시 8강전에서 멕시코와 득점없이 비긴 뒤 승부차기에서 이겼지만 A매치 공식 기록은 무승부로 남아있다. 지난해 1월 본프레레호의 LA 평가전도 콜롬비아에 1-2 역전패, 파라과이, 스웨덴과 각각 1-1 무승부로 1무2패에 그쳤다. '상암 징크스'보다 더 길었던 한국축구의 한 가지 징크스가 이렇게 보기좋게 깨졌다. (로스앤젤레스=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