딕 아드보카트 축구대표팀 감독은 16∼25일 열흘간 중동에서 전지훈련을 하는 내내 국내 취재진을 만날 때마다 "현재로선 승패는 중요한 게 아니고 젊은 선수들을 테스트하고 팀을 만들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18일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전에서 예상과 달리 0-1로 패배한 뒤에는 평소와 달리 취재진 질문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며 "왜 자꾸 승패를 따지느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하지만 여론은 그다지 승패를 따지고 들지도 감독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지도 않았다. 언론도 마찬가지였다. 여론이 이처럼 잠잠한 데에는 2002년 한.일월드컵을 이끌어간 거스 히딩크 전 대표팀 감독의 경험이 큰 몫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2000년말 한국 대표팀 감독에 부임한 히딩크는 2002년초까지 전지훈련과 평가전에서 수많은 패배를 당했다. 심지어 프랑스와 체코에 잇따라 0-5로 패하면서 '오대영'이라는 별명을 얻는 등 언론과 국내 축구계의 집중포화를 받아 무능한 감독으로 낙인 찍혔을 정도였다. 과거 같으면 감독이 바뀌어도 여러 차례 바뀌었을 테지만 '고집쟁이' 히딩크 감독은 "내 목표대로 가고 있는 중이다. 여론은 신경 안 쓴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히딩크는 패배를 경험하는 동안 자신의 공언대로 다양한 전술조합을 시험했고 2002년 3월 핀란드에게 2-0으로 이긴 것을 계기로 본격적인 상승세로 접어들었다. 히딩크의 좌절과 성공을 경험한 여론은 아드보카트호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85위 UAE에 무기력한 0-1 패배를 당했을 때에도 냄비처럼 들끓지 않았다. 오히려 "선수들이 K리그가 끝난 뒤 한달 남짓 쉬다가 대표팀에 소집된 지 며칠 지나지 않아서 몸 상태가 100%에 이르지 못했다"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였다. UAE에 지든 그리스와 1-1로 비기든 "전지훈련의 모든 과정은 월드컵이 열리는 독일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감독의 말에 수긍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언제쯤이면 승패에 신경을 쓸 것인가. 아드보카트 감독은 이미 타임 스케줄을 제시했다. 그는 중동 전지훈련이 막 시작됐을 때 "다음달 16일 멕시코와 평가전을 치를 때쯤에는 독일월드컵에 갈 멤버가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로는 베스트 멤버를 데리고 본격적인 평가전을 치르겠다는 소리다. 그전까지는 이기면 좋고 져도 할 수 없는 '히딩크 타임'이 아드보카트에게 주어질 가능성이 크다. 지금은 한국을 떠나 호주 대표팀 감독을 맡고 있는 히딩크 전 감독이 '독이 든 성배'를 치켜든 후배 감독을 돕고 있는 셈이다. (리야드=연합뉴스) 이충원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