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국내외 축구 팬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 한 시대를 풍미하며 그라운드를 누볐던 숱한 별들을 잃고 슬픔에 잠겨야 했다. 지난 1960-70년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스타 조지 베스트가 지난달 25일 폐렴과 내출혈로 투병하던 끝에 59세를 일기로 숨졌다. 펠레가 월드컵이 낳은 스타라면 북아일랜드 출신으로 월드컵 무대를 밟지 못한 베스트는 클럽 축구스타였고 그의 죽음은 북아일랜드 뿐만 아니라 옛 팀 동료 보비 찰튼, 웨스트 브룸위치 감독 브라이언 롭슨 등 영국 전체를 슬픔에 빠지게 했다. 지난 1일 홈 구장 올드 트래포드경기장 추모식장에는 "조지 베스트, 당신은 이름 그대로 최고였습니다.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겁니다"라는 배너가 걸렸고 이틀뒤 벨파스트에서 열린 장례식에 다이애나 영국 왕세자비 장례식이후 가장 많은 조문객이 몰려 50만명이 추모행렬에 동참했다. '토털 사커'의 창시자 리누스 미셸(네덜란드)도 지난 3월 77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1974년 서독월드컵 당시 '전원 공격, 전원 수비'라는 새로운 개념을 창시하며 네덜란드를 준우승으로 이끌었고, 딕 아드보카트 축구대표팀 감독이나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이 그의 계보를 잇고 있다. 헝가리에 4차례 월드컵 본선행을 선사한 라요스 바로티 전 대표팀 감독은 최근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91세. 한국 축구계는 1948년 런던올림픽과 1954년 스위스 월드컵 당시 골키퍼 홍덕영 옹을 지난 9월에 향년 79세로 떠나보냈다. 지금은 '새까만' 후배인 박지성(24)이 베스트의 후배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지만 당시 한국은 현대 축구의 흐름에서 한참 뒤처져 있었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을 달고 첫 출전한 런던올림픽 8강전에서 스웨덴을 만난 고 홍덕영은 후일 "스웨덴의 슛 48개를 막아내느라 경기가 끝난 뒤에도 가슴을 얼얼했다"고 회고했을 정도였다. 런던올림픽과 스위스 월드컵에서 공격수를 맡았던 정남식 옹이 지난 4월 유명을 달리했고, 1950년대 유명한 국가대표 공격수를 거쳐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를 역임한 김동근 옹은 지난 10월 향년 78세로 숨졌다.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chungw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