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까지 호락호락 무너질 순 없다' 이종범(35.기아)이 충격의 창단 첫 꼴찌를 눈앞에 둔 기아의 마지막 자존심 역할을 자임하며 고춧가루 부대의 선봉에 섰다. 이종범은 20일 광주구장에서 벌어진 2005 프로야구 SK와의 경기에서 연장 10회말 극적인 끝내기 솔로홈런을 터뜨려 팀에 4-3 짜릿한 승리를 안겼다. 이종범은 3-3으로 팽팽한 연장 10회 상대 5번째 투수 채병용의 2구째를 통타, 좌측 펜스를 넘기는 결승 홈런을 엮어내며 이날 승리를 위해 총력전을 펼친 갈길 바쁜 SK의 발목을 확실히 붙잡았다. 이종범은 앞서 3회에도 2사 2루에서 상대 선발 김원형에게 통렬한 2루타를 빼앗으며 선취점을 올리는 등 이날 5타수2안타, 2타점, 2득점의 맹타를 휘두르며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기아는 이날 이종범의 활약 덕분에 치욕스런 최다패 신기록 수립에 가까스로 제동을 걸 수 있었던 셈. 기아는 한가위 전날인 17일 광주 두산전에서 4-8로 패하며 지난 2000년 기록한 시즌 최다패(72패)와 타이를 이뤄 올시즌 남은 경기에서 단 1번만 패하더라도 새로운 기록까지 덤으로 떠안게 되는 처지다. 반면 이종범이라는 암초에 걸린 SK는 이날 LG에 덜미를 잡힌 선두 삼성에 1.5게임 차로 따라붙을 절호의 기회를 놓친 동시에 3위 두산에 1게임 차로 쫓기는 신세가 돼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됐다. 올 시즌이 끝나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게 되는 이종범은 보다 적극적인 타격을 위해 검투사 헬멧을 벗어던지고 남다른 각오로 시즌을 시작했다. 하지만 최다 우승 경험을 자랑하는 팀이 올시즌 단 한번도 반격다운 반격을 해보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꼴찌로 추락하는 것을 지켜보며 팀내 최고참으로서 누구보다 참담한 심경을 가눌 길이 없었던 것도 사실. 그러나 팀이 꼴찌를 거의 굳힌 마당이지만 이종범은 마지막 자존심마저 버릴 수 없다는 오기로 홀로 분전을 이어가고 있다. 타격 4위(0.314), 득점 9위(68점), 도루 6위(27도루), 출루율 6위(0.397)의 성적이 이를 입증한다. 이종범은 이날 경기 후 "슬라이더를 노렸는데 가운데로 몰려 들어오길래 힘껏 휘둘렀다"면서 "그동안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는데 앞으로 탈꼴찌 여부를 떠나서라도 남은 경기 최선을 다하겠다"며 담담히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현윤경 기자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