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2006.04.03 03:55
수정2006.04.09 17:23
"선배의 한(恨) 풀어다오."
핀란드 헬싱키에서 열리고 있는 2005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중거리 선.후배 룸메이트 콤비인 이재훈(29.고양시청)과 이진일(32) 대표팀 코치가 다시 한번 세계무대에 도전한다.
작년 아테네올림픽에서 단 0.3초 차이로 한국 트랙 사상 첫 준결승 진출에 아깝게 실패한 이재훈은 12일 새벽 2시20분 남자 800m 예선에 출전한다.
중거리인 800m는 김복주, 김봉유의 아시안게임 우승과 94년 이진일 코치가 아시아신기록을 세운 것을 비롯해 80-90년대 한국육상을 대표하던 종목이다.
그러나 유독 세계선수권과는 인연이 없었다.
아시안게임을 2연패한 이 코치도 93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대회에 출전했지만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경희대 선.후배 사이로 대표팀에서 방을 함께 쓰며 동고동락했던 이진일-이재훈은 눈빛만봐도 마음이 통하는 육상계의 소문난 콤비.
'트랙의 조련사'로 변신한 이 코치가 지난달 13일부터 독일 쾰른에서 집중적인 조련을 했고 이재훈은 지난달 30일 벨기에 중거리대회에서 케냐 선수들과 맞붙어 우승을 차지해 자신감도 붙었다.
한달째 유럽에서 전지 훈련을 해 현지 적응을 완전히 끝냈고 경기 당일 기온에만 잘 대비하면 한국 육상 사상 최초의 트랙 준결승 진출이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기록만 놓고 보면 예선 통과는 여전히 어려운 벽이다.
800m는 51명이 예선 7개조로 나눠 조 1.2위가 준결승에 직행하고 기록 순으로 나머지 10명이 예선을 통과한다.
1분46초24의 최고기록을 가진 이재훈은 1분45초대에 진입해야 준결승 진출을 넘볼 수 있다.
이 코치는 "아시아에서 8명이 나왔는데 그중에서 가장 빨리 뛰고 준결승에도 오른다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
재훈이도 이제 나이가 들어 한국육상의 터를 닦는다는 생각으로 레이스에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선수단의 살림꾼' 노릇을 하고 있는 이 코치는 선수들 먹거리를 만드느라 현지에서 시장도 봐야 하고 총무 일까지 하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쁘다.
전성기인 96년 애틀랜타올림픽을 앞두고 무심코 먹은 감기약 때문에 올림픽 한해 전 도핑테스트에 걸려 한국 트랙의 신기원을 열어젖힐 기회를 놓쳤던 이 코치는 자신의 아픈 기억 때문에 선수들이 먹는 알약 하나하나에도 온갖 신경을 쓰느라 머리가 곤두설 지경이다.
그는 하지만 "국제대회에 한두번 나가보는 것도 아니고 이 정도 일은 해내야죠"라며 훈련 준비에 몰두했다.
(헬싱키=연합뉴스) 옥 철 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