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여정이었다.

9일 새벽(이하 한국시간) 열사의 폭염에 거센 모래바람이 휘몰아치는 쿠웨이트시티에서 날라온 4-0 대승과 6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의 낭보는 숱한 굴곡과 부침 속에 이뤄낸 귀중한 결실이었다.

2002한일월드컵에서 기적같은 4강 신화를 이룩한 한국축구는 세계무대에 위상을 드높였으나 거스 히딩크 감독이 떠나간 이후 태극호의 행보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한일월드컵 이후 태극전사들이 치른 A매치는 모두 43경기로 전적은 21승10무12패.
2002년 11월 월드컵 챔피언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서 비록 2-3으로 졌지만 세계를 놀라게 한 선전을 펼치면서 차기 월드컵을 향한 대표팀의 여정은 시작됐다.

이듬해 포르투갈 출신의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을 영입한 한국축구는 한일전에서 1승1패를 교환한 뒤 남미의 강호 우루과이, 아르헨티나에 연달아 덜미를 잡혀 불안한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국내파 베테랑과 젊은 피를 혼합해 틀을 짠 대표팀은 아시안컵 2차예선 홈경기에서 약체 베트남, 네팔, 오만을 손쉽게 요리했지만 2003년 10월 원정에서는 치욕적인 '오만 쇼크'를 경험했다.

월드컵 4강의 자만심에 빠진 한국축구가 베트남, 오만에 연속 충격패로 대망신을 당한 것.
아시안컵 본선 티켓을 따내기는 했지만 코엘류 감독의 지도력과 태극전사들의 흐트러진 정신력이 곧바로 도마 위에 올랐다.

그해 12월 동아시아선수권에서도 답답한 경기로 일관한 대표팀은 지난해 2월 오만에 5-0으로 화끈한 설욕전을 펼치며 전열을 가다듬었고 월드컵 2차예선 1차전(수원)에서 레바논을 2-0으로 완파해 산뜻한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운명의 2004년 3월31일.
몰디브 원정에서 코엘류호는 한국축구 사상 최악의 졸전 끝에 아시아 최약체 몰디브와 치욕적인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코엘류 감독은 퇴진 압력에 시달리다 작년 4월19일 전격 사퇴를 발표했고 축구협회는 곧바로 후임 사령탑 인선에 돌입했다.

2000년 유럽축구선수권에서 포르투갈을 4강 대열에 올려놓은 명장 코엘류는 14개월 간의 짧은 재임기간 두번이나 졸전 쇼크를 경험하며 불명예 하차한 사령탑으로 기록됐다.

위기의 한국축구를 독일월드컵 본선 무대로 이끌 적임자를 찾기는 쉽지 않았다.

한일월드컵에서 세네갈의 8강 돌풍을 이끌었던 브뤼노 메추 감독을 우선 협상대상자로 선정한 뒤 협상에 들어갔으나 돈 문제로 대화가 틀어져 영입 작업이 무산됐다.

두 달간의 사령탑 공백기를 지난 뒤 태극호의 선장이 된 주인공은 아프리카.중동의 척박한 환경에서 지휘봉을 잡아온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이었다.

본프레레 감독은 취임 직후 '게으른 천재'로 여겨져온 이동국을 공격진에 탑승시킨 뒤 작년 7월 아시안컵 중국 원정에 나서 8강에서 막히기는 했지만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쿠웨이트를 완파하며 차곡차곡 승수를 쌓았다.

본프레레호의 최대 위기는 2004년 가을.
레바논 원정에서 최진철의 선제골을 지키지 못하고 1-1로 비겨 단 한팀만이 살아남는 2차예선에서 자칫 탈락할 위기까지 몰린 것.
11월17일 상암에서 열린 몰디브전에서 김두현의 결승 선제골이 터지지 않았다면 벼랑으로 추락하는 아찔한 순간을 맞을 뻔 했던 한국축구 최대 위기였다.

이후 본프레레호는 젊은 피를 수혈한다는 목표로 올 1월 미국 전지훈련을 실시했고 월드컵 최종예선 1차전에서 쿠웨이트를 2-0으로 완파, 순조롭게 출발했다.

하지만 또 한번의 위기는 있었다.

지난 3월 사우디아라비아 원정에서 0-2로 참패해 '담맘 쇼크'를 경험했고 이번 우즈베키스탄 원정까지 가슴 졸이는 순간이 반복됐다.

그리고 마지막 원정 결전지인 쿠웨이트시티에서 태극전사들은 가슴 후련한 골 퍼레이드로 본선행 대로를 활짝 열어젖혔다.

험난한 파도를 뚫고 독일로 가는 길에 접어든 한국축구가 딱 1년 남은 월드컵 본선까지 다시 한번 진군하기 위해 지금부터 진짜 시험대에 올라선 것이다.

(서울=연합뉴스) 옥 철기자 oakchu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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