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년 프로배구가 8일 대전 삼성화재의 챔피언 등극과 함께 약 80일간의 대장정을 마감했다. 4대 구기 종목 가운데 가장 늦게 프로로 옷을 갈아입은 배구는 야심차게 추진했던 신생팀 창단이 무산되고, 개막 직전까지 신인 드래프트 문제로 갈등을 빚는 등의 우여곡절을 거쳐 지난 2월20일 막을 올렸다. 삼성화재와 현대캐피탈의 라이벌전으로 치러진 개막전은 우려 속에 시작됐지만 7천명에 가까운 구름 관중이 몰린 가운데 성황리에 열렸다. 개막전부터 예상을 깨고 현대캐피탈이 대역전극을 일궈내는 파란으로 배구팬들을 열광시키자 배구계 일각에서는 삼성화재의 철옹성이 깨지며 배구판에 르네상스가 오는 것이 아니냐는 장밋빛 전망도 솔솔 나오기 시작했다. 개막전에서 예고됐듯이 올 시즌 배구판은 김호철 감독의 조련하에 힘과 높이를 앞세운 현대캐피탈의 약진으로 양강 구도로 재편되며 오랫동안 한 팀의 일방 독주에 염증을 느낀 배구팬들의 시선을 잡아매는 데 일단 성공했다. '만년 2위' 현대캐피탈은 정규리그에서 삼성화재와 2승2패의 대등한 경기를 벌이며 정규리그 1위를 차지했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비록 1승3패로 무릎을 꿇긴 했지만 과거처럼 일방적으로 무너지지 않고 치열한 접전을 펼치며 라이벌 구도를 확실히 정착시켰다. 삼성화재 역시 겨울리그 8연패 팀 다운 조직력과 끈끈한 수비력을 앞세워 정상 수성을 위해 매 경기 총력을 다하며 팬들에게 명승부를 선사했다. LG화재 역시 현역 최고 거포 이경수를 앞세워 정규리그에서 '무적함대' 삼성화재와 2차례나 풀세트 혈투를 벌이는 등 파란에 동참해 새로운 활력소 역할을 톡톡히했다. 여자부에서도 겨울리그 5연패의 현대건설의 독주가 끝나고 만년 2위 도로공사, 카리스마 넘치는 '맏언니' 최광희가 이끄는 KT&G가 물고 물리는 천적 사슬을 형성하며 흥미가 배가됐다. 팬들도 이들 팀이 맞붙는 경기엔 관중석을 꽉꽉 채우며 재미있는 경기엔 관중이 몰린다는 평범한 진리를 재확인해 주었다. 하지만 원년 리그가 급박하게 출범하다 보니 프로의 기본인 '홈 엔드 어웨이'를 채택하지 못했고, 방송사 중계 시간에 맞춰 평일 경기가 낮 시간에 편성된 이유로 대부분의 경기가 관중의 외면을 받는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 프로 스포츠에서 올 시즌 매진 경기가 챔프전을 포함해 단 7경기에 그쳤다는 것을 한국배구연맹(KOVO)과 구단들은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한편 시즌 후반 LG화재에서 불거진 구타 파문과 이후 구단과 KOVO에서 보여준 미온적인 대응 역시 프로배구의 현주소를 여실히 드러내는 사건이였다. LG화재는 당시 사건이 프로배구와 구단의 이미지에 결정타를 입히는 심각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관련자에게 솜방망이 처벌을 내려 비난을 자초했고, KOVO도 리그의 감독 주체로서 발빠른 대응을 하지 못해 무능함을 드러냈다. 때문에 원년 잔치는 끝났지만 뒷맛이 썩 개운치는 않다. 불과 6개월 후면 다시 2번째 시즌에 돌입하는 프로배구는 이 기간 신생팀 창단과 한전과 상무의 리그 참여문제, 용병 도입, 샐러리캡, 여자부 프로화 문제 등 많은 과제를 안고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뗀 프로배구가 산적한 문제를 슬기롭게 풀어 국민의 사랑을 받는 진정한 프로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서울=연합뉴스) 현윤경기자 ykhyun14@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