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판의 황제' 이만기 대 '모래판의 선비' 임용제, '털보' 이승삼 대 '미스터 코리아' 유영대, '모래판의 귀공자' 김칠규 대 '기술의 달인' 이기수..... 80년대 한국 모래판을 호령했던 민속씨름 1세대 선수들이 20여 년만에 마산에서 다시 샅바를 매고 양보 없는 한 판을 벌였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마산시민의 날 메인행사인 세계민속씨름축제의 하나로 5일 오후 마산체육관에서는 '역대 장사 추억의 라이벌전'이 열렸다. 이준희 신창코뿔소 감독이 감독을 맡은 청팀에는 이만기. 이승삼. 김칠규. 강광훈. 이윤진씨 등 5명이 자리잡고, '인간 기중기' 이봉걸씨가 감독을 맡은 홍팀은 임용제. 유영대. 이기수. 강순태. 구봉석씨 등 5명으로 구성됐다. 관중의 관심은 역시 마산 출신으로 천하장사에 10차례나 올랐던 이만기(인제대 교수)씨에게 쏠렸다. 이만기씨는 선수들과 인터뷰에 나선 바람잡이 '람바다' 박광덕씨가 "떨리지 않느냐"고 묻자 "현역 때 워낙 많이 떨어 오늘은 전혀 안 떨린다. 선수 때는 시합에 너무 나가기 싫어 체육관이 무너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팀 성적 2대 2 상태에서 관중의 큰 박수를 받으며 맨 마지막 경기에 등장한 이만기씨는 임용제씨와 대결에서 첫 판은 잡치기로 전광석화처럼 승부를 결정짓더니 둘째 판은 첫 판을 진 후 '역시 이만기'라며 너스레를 떨던 임용제의 들배지기에 쓰러졌다. 지난 91년 씨름판을 떠났다는 이만기씨는 셋째 판에서는 왼어깨걸어치기 기술로 임용제씨를 간단히 제압, 기술씨름의 진수를 보이기도 했다. 경남대 씨름팀 감독을 맡고 있는 털보 이승삼씨는 유영대씨와 대결에서 샅바잡기부터 팽팽한 신경전을 벌이다 좌반뒤집기와 들배지기로 한 판씩을 주고받았다. 마지막판에서 이승삼씨는 유영대씨 밑을 파고들다 3번의 시도 끝에 현역시절의 화려한 정면 뒤집기 기술을 보이며 승리했다. 경남 산청 출신으로 옛 진주상고 동기이기도 한 김칠규씨와 이기수씨는 '친구는 친구, 승부는 승부'라며 샅바잡기부터 신경전을 벌이다 등짝을 서로 때려 관중들의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 40㎏이나 더 무거운 김칠규씨는 첫 판 시작 3초만에 이기수씨의 기습공격에 당하고 나서 "자세가 잡히기 전에 호각을 분 심판 잘못"이라며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김칠규씨의 부인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이기수씨는 "어렸을 때 칠규를 한 번도 이겨보질 못했는데 오늘은 꼭 이겨서 망신을 시키겠다"고 호언했지만 잇따라 2판을 내주고 말았다. 셋째판 직전 박광덕씨에 이끌려 모래판 위로 올라와 관중에게 인사를 한 김칠규씨의 부인은 자리로 들어가면서 이기수씨에게 "져 줘"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한라장사를 7∼8차례씩 차지했던 강광훈과 강순태씨, 모래판의 '악바리'와 '거머리'로 불렸던 이윤진과 구봉석씨도 몸 생각해서 살살할 것이란 관중의 예상을 깨고 현역시절의 기량을 맘껏 발휘해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받았다. (마산=연합뉴스) 정학구 기자 b940512@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