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28.CJ)는 과연 재기하지 못하나. 무려 한달간 투어 중단이라는 극약 처방을 선택하면서 부활을 노리던 박세리는 29일(한국시간) 프랭클린아메리칸모기지챔피언십 1라운드에서 무려 9오버파 81타를 치며 고개를 떨궜다. 98년 데뷔 이래 메이저대회 4승을 포함해 22승을 올려 명예의 전당 입회까지 예약해놓은 '슈퍼스타'의 성적이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아마추어급 스코어. 문제는 박세리의 이같은 부진이 이제 더 이상 '1회성'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올들어 이번 대회까지 4개 대회에 출전해 10라운드를 소화한 박세리는 한번도 60대 타수를 기록하지 못했다. 시즌 데뷔전인 마스터카드클래식 첫날 75타를 쳐 우려를 샀던 박세리는 이튿날 71타로 희망을 보였지만 최종일 78타로 부진, 겨울 훈련의 효과에 의구심을 자아냈다. 두번째 대회인 세이프웨이인터내셔널에서도 박세리는 72타-73타로 한번도 언더파 스코어를 내지 못한 채 대회를 중도에 포기했고 메이저대회 나비스코챔피언십 때도 첫날 77타를 쳐 일찌감치 우승 후보군에서 탈락했다. 까다로운 코스에서도 2, 3라운드 연속 2언더파씩을 쳐내 회복 조짐을 보였던 박세리는 최종일 76타로 무너져 쓸쓸하게 코스를 떠나야 했다. 프랭클린아메리칸모기지챔피언십 1라운드를 포함한 10라운드 평균 스코어가 무려 74.3타. 박세리의 이런 부진은 더구나 작년부터 1년 이상 계속되어온 것이라는 점에서 더 심각하다. 지난해 박세리는 개막전 웰치스프라이스챔피언십에서 나흘 내내 60대 타수를 기록하면서 공동8위에 올라 발걸음이 가벼웠다. 다소 이상 징후가 눈에 띄긴 했지만 미켈롭울트라오픈에서 시즌 첫 우승을 차지하면서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까지 확정지은 박세리가 끝모를 부진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5월 사이베이스클래식 때부터. 1라운드 73타에 이어 2라운드에서 78타를 치며 컷 통과에 실패한 박세리는 이후 오버파 스코어가 언더파 스코어보다 더 많은 부진에 허덕였다. 9월 첫주 스테이트팜클래식에서 공동66위에 머물자 한달간 휴식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던 박세리는 삼성월드챔피언십에서 더 망가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3라운드에서 8오버파 80타를 쳐 시즌 두번째 80대 타수를 기록한 박세리는 20명 가운데 꼴찌로 대회를 마쳤다. 이번 대회도 한달간 투어 중단이라는 처방을 내린 뒤 가진 복귀전이라는 점과 전보다 더 나빠졌다는 점에서 작년 삼성월드챔피언십의 판박이. 당시에도 드라이브샷 정확도가 50%를 밑돌았고 그린 적중률도 50%를 간신히 넘었던 박세리는 이날 드라이브샷 정확도 42%, 그린 적중률 33.3%로 출전 선수 가운데 최하위권이었다. 퍼팅도 무려 31개에 이른 박세리의 플레이는 한마디로 수준 이하였다. 이에 따라 명예의 전당 입회 자격을 따낸 뒤 급격히 성적이 하락한데 주목한 전문가들이 '목표 상실에 따른 일시적인 허무감'이라던 슬럼프 원인도 새롭게 진단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특히 오랫동안 계속된 박세리의 '더블 코치 시스템'에 대해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 요긴하다는 지적이다. 박세리의 공식 코치는 미국에 진출할 때부터 인연을 맺었던 톰 크리비. 데이비드 레드베터 아카데미 코치였던 크리비가 아카데미를 떠나면서 독립하자 박세리도 덩달아 레드베터와 결별하고 크리비에게 전담 코치를 맡길 만큼 각별한 신뢰 관계를 쌓아왔다. 그러나 박세리의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나 아버지 박준철씨가 '구원투수'처럼 나서곤 했고 때문에 박세리에게는 '두명의 코치가 있다'는 게 공공연한 사실. 이번에 한달간 훈련도 아버지 박씨의 주도로 이뤄졌고 박씨는 크리비가 겨울 훈련 동안 만들어놨던 박세리의 스윙을 상당 부분 고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적 압박감 속에 '두명의 코치'에게 서로 다른 '스윙 교정'을 받아야 하는 박세리가 슬럼프 탈출 경로를 찾아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라는 짐작이다. 이와 함께 LPGA 투어에서 오로지 소렌스탐만을 경쟁자로 여기던 박세리가 이제는 자신의 위상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각오로 나서야 한다는 조언도 귀를 기울여야 할 대목이다. 한국골프의 상징인 박세리가 끝없는 추락을 멈추고 새로 비상하려면 '특단의 조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서울=연합뉴스) 권 훈기자 kho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