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회 호투하던 박찬호가 연속 3안타를 맞고 2실점하자 오렐 허샤이저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왔다. 이제 할 일은 다 했으니 교체 준비가 됐다는 신호였다. 허샤이저 코치의 설명을 듣던 박찬호는 입안에 물었던 마우스피스를 내뱉었다. 아쉬움의 신호였다. 다음 타자를 잡고 박찬호가 마운드를 내려오자 관중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 함께 일어나 뜨거운 기립박수를 보냈고 박찬호는 조용히 마운드를 내려왔다. 이날 박찬호는 많은 투심패스트볼을 던지며 에인절스 타선을 막아냈다. 하지만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의 호투를 가능케 한 것은 예전의 위력을 되찾은 커브였다. 이미 시범 경기에서 두 차례나 맞붙어 서로를 잘 아는 상황에서 커브는 박찬호에게 비장의 무기였던 셈. 박찬호는 스트라이크를 잡을 때에는 타자 얼굴 높이에서 떨어지는 높은 커브를 구사했고 투스트라이크 이후 헛스윙을 유도할 때에는 낮게 스트라이크존을 파고들다 홈플레이트 앞으로 떨어지는 커브를 구사했다. '천적' 블라디미르 게레로도 커브로 완벽히 농락했다. 이날 박찬호는 게레로와 세 번을 맞붙는 동안 11개의 공을 던졌다. 이 가운데 직구는 단 두 개였을 뿐, 박찬호는 누가 봐도 직구를 던져야 할 타이밍에 커브를 던져 게레로의 혼을 빼놓았다. 4회 두 번째 타석에서 박찬호는 연속 2개의 커브를 던져 볼카운트 0-2에 몰렸지만 3구째에도 커브를 던져 평범한 3루 땅볼을 유도했다. 또 6회에는 연속 4개의 변화구를 던진 후 150km짜리 직구로 볼카운트를 2-3로 끌고 간뒤 결국 커브로 빗맞은 중견수 플라이를 이끌어냈다. 개럿 앤더슨 역시 박찬호의 투심패스트볼에 타이밍을 맞추고 있다가 커브에 타이밍을 잃고 허둥댔다. 에인절스는 이날 6명의 왼손 타자를 배치하며 박찬호 공략에 나섰지만 이날 만큼은 박찬호의 허를 찌르는 볼배합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알링턴=연합뉴스) 김홍식 특파원 ka12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