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희와 악몽.' 스페인 프로축구 호화군단 레알 마드리드에서 한솥밥을 먹는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간판 스타이자 주장인 지네딘 지단(32)과 데이비드 베컴(29)의 운명이 극명하게엇갈렸다. 14일(한국시간)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04) B조 조별리그 1차전에서 '원맨쇼'를 펼치며 프랑스의 역전 드라마를 일궈낸 지단은 '레블뢰'군단의 영웅이 됐고 후반승리를 굳힐 수 있었던 페널티킥 기회를 실축으로 날려버린 베컴은 한없이 고개를떨궈야 했다. 두 스타의 명암은 후반 45분까지는 정반대였다. 베컴은 전반 28분 프리킥 찬스에서 컴퓨터 크로스로 프랭크 램파드의 헤딩 선제골을 이끌어내며 1천78분 동안 닫혀있던 프랑스의 골문을 열어젖힌 공신이었다. 반면 지단은 '아트사커 지휘관'답지 못한 무딘 패스로 최전방의 두 킬러 티에리앙리와 다비드 트레제게에게 제대로 '실탄'을 배급해주지 못한 채 허둥댔다. 경기가 그대로 끝났다면 베컴은 웃고 지단은 울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3분간의 후반 인저리타임은 두 스타의 표정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지단은 자신이 왜 국제축구연맹(FIFA) 올해의 선수인지를 입증하는 신기의 프리킥 동점골과 페널티킥 결승골을 연달아 터뜨리며 포효했다. 2002한일월드컵에서 프랑스의 몰락을 벤치에서 지켜보다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 아픈 다리를 이끌고 그라운드에서 나섰건만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충격을 감수해야 했던 지단으로서는 2년 만의 완벽한 부활이었다. 지단은 "자신감과 불굴의 정신이 만들어낸 경기"라며 "우리는 지지않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그랬기에 고통을 딛고 흐름을 뒤바꾸며 승리를 손에 쥘 수 있었다"고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페널티킥 찬스를 놓친 베컴은 "나로서는 더 이상 잘 찰 수 없는 킥을 날렸지만바르테즈(프랑스 골키퍼)는 이미 내 움직임을 읽고 있었다. 훌륭했다"고 비교적 담담하게 말했다. 지단과 맞대결한다는 사실 만으로도 행복하다고 경기전 소감을 밝혔던 베컴은 "우리는 89분 동안 이겼고 충분히 이길 만큼 잘 싸웠다. 하지만 마지막 몇 분이 아니었다. 축구는 이런 것이다"며 아쉬워했다. 양팀의 지휘봉을 잡고 있는 명장 자크 상티니 프랑스 감독과 스벤 고란 에릭손감독의 희비도 엇갈렸다. 상티니 감독은 "지지 않겠다는 놀라운 의지로 패배를 극복했다. 우리 선수들은희망을 버려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입증했다. 완벽한 응수였다"고 선수들을 치켜세웠다. 에릭손 감독은 "90분 간 훌륭한 경기를 펼쳤지만 마지막에 지독히도 운이 없었다. 이제 다음 경기를 대비하는 수 밖에 없다"고 쓴맛을 곱씹었다. (서울=연합뉴스) 옥철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