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뤼노 메추(50) 감독 = 프랑스 출신의 메추 전 세네갈축구대표팀 감독은 2002한일월드컵에서 거스 히딩크 전 한국팀 감독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지도자. 월드컵 초년병 세네갈을 일약 8강에 올려놓아 세계적 명성을 얻은 데 이어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알 아인의 지휘봉을 잡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초대 챔피언에 올리는 등 지도력을 검증받은 인물이다. 지난 2002년 말 한국축구 사령탑직을 놓고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과 경합을 벌였지만 고배를 마셨었다. 메추는 알 아인과의 계약문제가 걸려있지만 국내 축구팬들이 영입 1순위로 거론할 정도로 선호도가 높아 가장 유력한 후보로 손꼽힌다. 록뮤지션을 연상케하는 치렁치렁한 금발머리의 소유자인 그는 한일월드컵에 앞서 열린 아프리카네이션스컵에서 '미완의 대기' 세네갈의 준우승을 일구기도 했다. 경기 또는 훈련에서는 자신감 배양과 팀워크를 중시하는 스타일이나 그 외 시간에는 선수들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선수 장악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다. 던커크(프랑스)에서 선수생활을 시작해 설기현이 뛰고 있는 안더레흐트(벨기에),릴, 발랑시엔, 니스, 보베(이상 프랑스)를 거쳤으나 스타플레이어로 각광받지는 못했고 보베에서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해 발랑시엔와 세당(프랑스) 등을 거쳤다. ▲셰놀 귀네슈(52) 감독 = 귀네슈 감독은 골키퍼 출신으로는 드물게 지도자로 성공한 케이스. 2002한일월드컵 때 터키를 48년만에 본선에 올린 데 이어 아무도 예상하지 않았던 3위의 기적을 연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1952년 터키 북서부의 흑해 연안 트라브존에서 태어난 귀네스는 75-84년 현지클럽 트라브존스포르에서 골키퍼로 선수생활을 하며 골문을 단단히 지켜내 대표팀수문장으로도 활약했다. 이후 트라브존스포르의 사령탑으로 취임한 뒤에는 90년대 중반 2차례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고 94년 UEFA컵에서는 잉글랜드의 강호 아스톤빌라를 꺾는 대파란을 일으키며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또 지난 87년부터 14년간 터키리그에서만 6차례나 팀을 옮기며 6차례 리그우승을 차지하고 자신이 지도한 많은 스타선수들을 유럽리그로 진출시켜 주목을 받았다. 선수들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는 다소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지만 말보다는 묵묵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타입이다. 귀네슈는 그러나 2004유럽축구선수권 본선 진출 실패의 책임을 지고 터키축구지휘봉을 놓은 것이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루이스 펠리페 스콜라리(56) = 뚝심을 지닌 '냉혹한 승부사'로 알려진 스콜라리 감독은 2002한일월드컵 때브라질의 대회 통산 5번째 우승을 견인한 월드컵 우승 감독 출신. 지난 87-90년 브라질 그레미우와 99년 팔메이라스팀의 감독을 맡았던 그는 선수나 감독 시절 의견을 굽힌 적이 없다고 밝힐 만큼 고집이 세고 주관이 뚜렷한 지도자. 그가 지난 2001년 6월 '삼바축구'의 지휘봉을 잡은 뒤 브라질 팬들의 사랑을 듬뿍받고 있던 노장스타 호마리우 등을 대표팀에서 퇴출시킨 것은 그의 불같은 성격을잘 드러내는 대목이다. 개인기 보다는 조직력을 중시하는 인물이다. 월드컵 이후 포르투갈의 감독으로 보직을 변경한 스콜라리는 다음달 포르투갈에서 열리는 유로2004 때문에 한국으로 둥지를 옮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있다. ▲마이클 매카시(45) = 매카시 전 아일랜드대표팀 감독은 2002한일월드컵 때 아일랜드를 16강으로 이끈 인물. 매카시는 월드컵 때 팀의 주축 멤버였던 로이 킨(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을 버릇이 없다며 귀국시키는 등 '대쪽성격'으로 유명하다. 선수시절 '애니멀'이라는 별명이 말해 주듯이 몸싸움을 즐겨 상대팀 선수들에게공포의 대상이었고 지난 90년 이탈리아대회 때 대표팀 주장을 맡았다. 92년 잉글랜드 프로팀 밀월의 감독으로 지도자에 데뷔했고 96년 잭 찰튼의 뒤를이어 30대에 아일랜드축구의 지휘봉을 잡았지만 경험 부족으로 유로96, '98프랑스월드컵, 유로2000에서 성적을 내지 못해 낙마 위기에 몰리기도 했었다. 매카시는 탄탄한 수비를 바탕으로 잉글랜드 스타일의 힘의 축구를 구사하는 스타일이다. ▲다니엘 파사렐라(51) = 파사렐라 감독은 지난 78년 아르헨티나월드컵 우승 당시 아르헨티나 국가대표주장을 지낸 스타플레이어 출신으로 94년 미국월드컵 직후 월드컵에서의 졸전과 마라도나의 약물 파문 등으로 만신창이가 된 아르헨티나축구 사령탑을 맡아 재건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은 남미의 대표적인 명장 중 한명. 치렁치렁한 머리가 트레이드 마크인 간판 골잡이 가브리엘 바티스투타에게 '단발령'을 내렸던 일화는 유명하다. 파사렐라는 아르헨티나 감독 재임 시절 스타의식에 젖어있던 주축 선수들의 자유분방한 행동을 철저히 통제해 '철권통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자신의 지도력을 입증할 시험대였던 98년 프랑스월드컵에서는 조별리그에서 승승장구했으나 8강전에서 거스 히딩크 감독이 이끌던 네덜란드에 일격을 당해 꿈을접었다. 이후 파사렐라는 우루과이대표팀을 맡기도 했으나 선수 차출을 둘러싼 잡음으로2002한일월드컵을 앞두고 중도 하차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재천기자 jc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