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축구대표팀이 31일 2006독일월드컵축구대회 아시아 2차예선에서 약체 몰디브와 득점없이 비기며 보여준 최악의 졸전은 안이한 팀운영과 주먹구구식 행정이 빚어낸 예고된 재앙이라는 지적이다.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은 지난 해 10월 아시안컵 예선 오만 원정에서 베트남과 오만에 충격의 연패를 당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상황에서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함으로써 팬들에게 더 심한 충격을 안겼다. 코엘류호 태극전사들이 90분 내내 실망스러운 플레이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은 정신 무장에도 문제가 있었지만 대표팀 소집과 훈련 등 준비과정에서 나타난 일련의 사태가 발단이 된 것으로 보인다. 코엘류 감독은 지난 19일 몰디브 원정을 떠날 대표팀 명단을 발표하면서 차두리(프랑크푸르트)와 설기현(안더레흐트) 등 해외파 5명을 소집했다. 그러나 지난 29일 몰디브 현지로 곧장 합류한 차두리는 현지에 도착해보니 발등뼈에 실금이 가 도저히 뛸 수 없는 상황이었고 코엘류 감독도 상태를 본 뒤 차두리를 독일로 다시 돌려보냈다. 리그 도중에 소집이 됐고 부상 정도를 정확히 파악하기 힘든 사정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그라운드에 서지도 못할 선수가 원정지까지 왔다고 그냥 돌아가는 사태는 일정 수준 이상의 대표팀이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지적이다. 결국 코엘류호는 기본 엔트리인 18명도 채우지 못한 채 혹독한 무더위 속에 경기장에 나섰고 멤버 교체의 폭이 줄어들었음은 물론 다른 선수들의 사기에도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축구협회가 유기적인 연락망을 갖추고 차두리의 부상 상태를 면밀히 파악하고 있었다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또 광대뼈 함몰 부상으로 얼굴에 안면보호대를 착용한 설기현도 그동안 대표팀에서 보여준 활약상을 감안하더라도 날씨 여건을 감안하면 굳이 소집했어야 했는가라는 의구심이 남는다. 유럽파 선수들이 객관적인 실력에서 뛰어나다고는 하더라도 유럽 시즌이 막바지로 치닫아 체력이 소진돼가는 시점이었다면 국내파 선수들을 중용해 조직적인 준비를 하는 편이 나았다는 견해도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이 142위에 불과한 몰디브와의 경기를 앞두고 코엘류 감독은 "방심은 절대 금물"이라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결과적으로 말만 앞세웠을 뿐 내실있는 준비는 소홀히 했다는 비난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코엘류 감독은 지난 25일 파주 NFC(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 선수들을 소집한 뒤 이틀간 국내 훈련을 거치고 27일 출국하고 사흘간 현지 적응을 했지만 35℃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와 낮 경기라는 점을 감안했다면 현지 적응 기간을 더 늘렸어야 하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이회택 전 전남 감독은 "선수들이 총체적으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것 같다"고 말해 이런 지적을 뒷받침했다. 여기에다 몰디브가 2002한일월드컵 예선 홈 경기에서 중국에 단 한골차로 지는 등 안방에서 유난히 강했다는 점에 비춰 몰디브 홈 경기의 특징이나 현지 경기장 여건 등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 수집에도 소홀했던 것으로 꼬집을 수 있다. 지난 해 오만발 쇼크로 코칭스태프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부재와 프로 구단들과의 갈등 등 여러 파열음이 새나왔던 코엘류호가 이번 몰디브발 쇼크를 계기로 또 다시 좌표를 잃고 표류할 지 모른다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서울=연합뉴스) 옥철기자 oakchu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