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판까지 선전했지만 캐나다 밴쿠버에 2010년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넘긴 평창의 패인은 한마디로 국제적으로 낮은 인지도와 경험부족 때문이었다. 3년 전 강원도가 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국제스포츠 무대에 처음 나섰을 당시'평창'이라는 산골 마을을 알고 있는 IOC 위원은 사실상 전무했다. 평창과 경합을 벌였던 밴쿠버와 잘츠부르크는 설명이 필요없는 세계적인 휴양도시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평창은 외국인들이 발음조차 어려워 하며 곧잘 `평양'과혼선을 빚기도 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유치활동이 수월할 수 없었다. 각 국을 돌면서 IOC 위원들을 만나더라도 평창이라는 지역부터 먼저 소개해야했고 강원도의 질좋은 스키장을 설명하기는 더더욱 힘들었다. 또한 오스트리아가 2차례, 캐나다는 1번 동계올림픽을 치른 경험이 있지만 동계종목 불모지로 불렸던 한국의 입장에서는 경험부족도 어쩔수 없는 약점이었다. 모든 게 처음이다 보니 동계 종목과 관련된 인적.기술적 자원이 빈약할 수 밖에없었고 그만큼 올림픽 유치에 걸림돌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평창의 패인은 `두터운 서구의 벽'을 넘지 못한 탓이다. IOC가 '유럽 귀족들의 철옹성'으로 불리는 가운데 특히 동계종목은 백인들의 전유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19번의 동계올림픽은 일본에서만 두 차례 열렸을 뿐 나머지는 유럽과 북미를 오가며 교대로 개최됐다. 이번 유치 과정에서도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이 밴쿠버를 지지하고 있다는 소문이 무성했고 지중해 연안의 유럽국가들은 잘츠부르크를 지원한 것으로 전해졌다. 더구나 서구 세력들은 2008년 하계올림픽이 중국의 베이징에서 열리는 것을 감안, 아시아에서 동.하계 올림픽이 연달아 열리는 것은 부당하다며 지지세력을 확산해 나갔다. 이같은 악조건속에도 평창이 잘츠부르크를 제치고 2차투표까지 오르고 2차투표에서도 간발의 차로 밴쿠버에 밀린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번 총회에서 `평창'은 확실한 인지도를 확보한 만큼 4년 뒤에는 반드시 좋은결과가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 (프라하=연합뉴스) 천병혁기자 shoeles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