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으로 하나된 4천만" "근대화 100년간 가장 희망적인 사건" 지난 2002 한일월드컵은 한국현대사에서 유일무이하게 온 국민이 하나가 돼 마음으로 기뻐한 축제의 장이었다. 월드컵이 우리에게 남긴 것은 '자부심'과 '통합', 그리고 열정적인 '참여'의 경험으로 요약된다. IMF 경제위기라는 미증유의 사태로 휘청거리던 우리 국민은 히딩크 감독과 대표팀이 꿈속에서나 가능한줄 알았던 '세계 4강 신화'를 이룩하는 모습을 보면서 불과수년만에 위기에서 용수철처럼 탈출한 우리의 저력을 두 눈으로 확인했다. 분단과 전쟁의 현대사를 거치며 붉은색만 보면 움츠러들던 '레드 콤플렉스'는전국을 뒤덮은 '붉은 물결'에 씻겨져갔고, 일본과의 뿌리깊은 경쟁심리도 '한국이개최성적에서 일본을 6대 0으로 앞섰다(리베라시옹)' '월드컵 최대의 승자는 한국국민(뉴스위크)' 등 세계의 찬사를 받은 완벽한 경기운영과 열기로 날려버렸다. 독일과의 4강전 하루에만 700만명 가까운 인파가 거리를 메운 범국민적 신바람은 이념과 지역, 계층으로 갈라진 우리도 하나가 될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 '한국인은 모래알'이라는 비아냥을 뿌리치게 했다. 또 철저히 자신만 알고 사회에 무관심한 개인주의적 세대라는 오해가 덧씌워졌던 10∼20대는 오히려 거리응원 물결을 주도하면서 '태극기 패션'과 같은 당당하고밝은 모습으로 자신들이 과거 권위주의와 단절된 새로운 희망의 세대임을 입증했다. 그로부터 1년, 현재의 한국사회는 일견 마치 월드컵 이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는목소리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제2의 IMF'를 연상시킬 정도로 불안한 경제와 숨가쁜 민생,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는 집단적 요구제기와 삐걱거리는 국정운영, 정부의 개혁정책과 대북.대미외교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좌우.동서간 갈등에 불을 붙이면서 나라 전체를 사분오열에 가까운 양상으로 몰고가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월드컵 당시의 국민적 열기에 대해서도 "한국인 특유의 '냄비기질'이낳은 한때의 열광일 뿐"이란 냉소적 시각도 인터넷 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이같은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 각계의 여러 인사들은 "이미 변화는 시작됐으며, 당장 모든 것이 바뀌지 않았다고 월드컵의 성과가 사라졌다는 것은 지나친단견일 뿐"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새만금 갯벌살리기 '3보1배' 행렬에 참가하고 있는 김타균 녹색연합 정책실장은"3보1배만 해도 출발은 단 4명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천명 이상 동참하고 있다"며 "아무런 조직적 동원없이 사람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모이는 것은 분명 월드컵 이후로 뚜렷해진 현상"이라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참여를 주저하던 보통 시민들이 이제 자신이 동감하는 이슈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거리로 나서면서 시민운동가와 일반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는것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해 여중생 촛불시위나 올해 반전운동은 월드컵을통해 얻은 참여의 경험과 고양된 국민적 자부심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될 수 있다"며"다만 이같은 변화는 수십년간 고착된 국민들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으로 단번에 이뤄지지 않는 과정"이라며 지나친 조급함을 경계했다. 최근의 사회적 갈등에 대해서도 지나치게 부정적 측면만을 부각시켜 '혼란' 등으로 보기 보다는 그간 쌓여왔던 문제가 표출돼 결국 해결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박원순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는 "월드컵 기간 나타난 열정적 응원과 단결, 통합의 모습은 두고두고 사회적 통합의 계기로 작용할 것"이라며 "현재의 갈등은 그자체를 부정적으로 보기보다는 이를 전체 사회의 입장에서 양보하고 조정해 통합을이뤄내는 방법.기술이 어떤 것이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으로 대표되는 합리적 리더십의 역할이 지금, 그 어느때보다 소중한 시기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신철영 경실련 사무총장은 "대표팀의 4강진출은 우리도 올바른 리더십을 만나면충분히 잠재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라며 "축구뿐만이 아니라 정치.사회 등 각 분야에서 학연이나 지연 등을 배제하고 기본적 원칙을 세우는 지도력을 세워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신 사무총장은 "지난 대통령선거가 비교적 깨끗이 치러지는 등 '월드컵 효과'가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으나 다만 사회지도층의 역할이 기대에 못 미치는 등 리더십이잘 나타나지 않고 있다"며 "합리적 리더십이 하루빨리 형성돼서 정치개혁 등을 통해월드컵으로 확인된 잠재력을 실현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진형 기자 jh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