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밤의 부푼 공기를 가르며 주말 밤차를 타고 떠나는 마음은 한없이 설렌다. 목적지는 전남 보성,차 향기 그윽한 초록빛 다원이다. 새벽에 도착하면 푸르스름한 안개를 두른 산허리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차나무들의 풍경이 일품이다. 보드라운 융단처럼 펼쳐진 차밭에 서니,녹차 향기가 사방에서 퍼져 나오는 것만 같다. 녹차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시원스레 펼쳐진 푸른 차밭의 풍경을 보기 위해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하는 곳,전남 보성.둥그스름한 차나무들이 줄지어 가지런히 재배되는 다원의 모습은 보성의 트레이드 마크로 굳어졌다. 차나무는 1년 내내 날씨가 따뜻하고 연간 강우량이 1,500mm가 넘는 해양성 기후에서 잘 자란다. 보성지역은 강우량은 약간 부족하지만 바다가 가까운 덕에 안개가 많아 차 재배에 필요한 수분을 충분히 공급받을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보성의 다원에서 생산하는 녹차만도 연간 640톤으로 국내 녹차 생산량의 40%를 차지한다. 다원에 들어서면 먼저 울창한 삼나무 숲길을 통과하게 된다. 굵은 삼나무가 터널을 이루며 300m 가까이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걸으면 도시 생활에서 쌓였던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진다. 숲길 양옆으로 무성한 나무들이 한낮에도 아늑한 그늘을 드리워 고요하기 그지없다. 그 길의 끝에서 다다르는 순간,시야가 탁 트이며 끝없이 푸르게 펼쳐진 차밭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발 350m의 오선봉까지 계단식으로 조성된 차밭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정상에 오르면 이랑마다 굽이굽이 이어지는 녹색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차밭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에는 찻잎을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한다. 이맘때쯤이면 이제 막 여린 잎을 내민 차나무들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곡우(매년 4월20일) 전에 나온 아주 어린 찻잎으로 만든 차를 우전(雨前)이라 하는데,새의 혓바닥처럼 조그만 이 찻잎들은 곧 우전차가 될 것이다. 곡우를 넘겨 5월 초까지 자란 가는 찻잎으로 만든 차는 세작(細雀)이라 하고,5월 초순에서 중순사이에 좀 더 자란 찻잎으로 만든 차는 중작(中雀),5월 중순에서 6월 초까지의 굵은 찻잎으로 만든 차는 대작(大雀)이라고 한다. 찻잎이 어릴수록 맛이 담백하면서도 산뜻하고 가격도 비싼 편이다. 보성 차밭을 구경하기 가장 좋은 때가 4,5월이라는 것은 바로 이 때에 차나무가 가장 왕성하게 자라 시원하게 푸르른 모습을 최대한으로 뽐내기 때문이다. 차밭을 산책하기 가장 좋은 때는 해뜨기 전후.자욱한 안개가 사이로 더욱 푸르러 보이는 차밭을 거닐면 몸도 마음도 맑고 깨끗해지는 느낌이다. 해질 무렵 석양에 비치는 차밭 풍경도 아름답다. 빛의 기울기에 따라 차 이랑 그림자의 골이 깊어지면서,가지런한 줄무늬가 선명하게 돋보인다. 다업으로 유명해진 보성에는 이미 다수의 다원이 성업중이지만,그 중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대한다원은 전라남도 대표 관광농원으로 공인된 곳이다. 1940년대에 일본인에 의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해 현재는 국내 최대의 차 생산지로 성장했다. 해발 350m 활성산 자락에 위치한 덕에 산등성이의 둥근 곡선을 따라 끝없이 펼쳐진 차밭이 장관을 이루는 이 곳은 TV광고나 드라마와 영화의 배경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사시사철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다원에서 율포 방향으로 봇재를 넘으면 '다향각(茶香閣)'이라는 이름의 전망대가 나온다. 누각 위에 오르면 바라다 보이는 것은 온통 푸르른 차밭.그 너머로는 영천 저수지의 잔잔한 물결이 내려다보인다. 구불구불 이어진 능선 사이로는 멀리 율포 앞바다의 한없이 너그러운 품이 열려 있다. 산과 바다와 물이 만나는 이곳에서라면 안분지족이 그다지 어렵지 않을 듯하다. 글=정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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