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은 물을 닮았다.


막히면 돌아가고, 갇히면 뚫고 넘어간다.


방해하는 것이 아무리 크고 강해도 어디든 가지 못할 데가 없다.


차지 않으면 거스르지 않는 물과는 달리, 구비구비 휘감아 오르기는 해도 서두르는 기색 없이 그냥 그렇게 앞을 여는 품성 또한 그러하다.


사람들은 그 길을 통해 소통한다.


길을 달려 살을 맞대고 눈을 보며 정을 나눈다.


길 위에 선다.


부산에서 시작해 함북 온성까지 뻗은 1천3백리 7번국도의 남측 끝자락, 고성의 통일전망대로 향한다.


서릿발 하얀 백두대간 자락에 기대 둥지를 튼 마을 마을의 이른 아침 풍경이 평화롭다.


50여년 분단세월이 자유로운 발걸음을 붙잡은 곳, 통일안보공원에 이르러 잠시 불편해진다.


하는둥 마는둥 한 교육(?)이란 걸 마치고 조금 더 차를 달려 민간인 통제구역임을 알리는 아치형 구조물 앞에서 차량통행증을 건네받는다.


길은 이제까지와 다를게 없다.


왼편에 이어지는 백두대간 줄기도, 오른편에 펼쳐진 동해의 푸른물도 여전하다.


'94년까지 민간인출입이 금지돼 깨끗한 자연을 보존하고 있다'며 자랑하는 최북단 명파마을의 시골분위기, 최북단 초등학교인 명파초등학교의 한갓진 모습도 어디에선가 본 듯 하다.


위장색을 한 군용차량 안 군인들의 얼굴도 그렇다.


다만 '땅굴' '무장공비' 등의 단어가 쓰인 표지판이 이 곳을 다른 곳과 경계짓는다.


해발 7백m 고지의 통일전망대.


두 손을 맞대 통일을 기원하는 대형 미륵불과 마리아상의 시선이 뻥뚫린 북쪽을 향하고 있다.


저너머 일출봉 신선대 채화봉 세존봉 옥녀봉 등 은빛으로 환히 이어지는 금강산 자락이 한눈에 잡힌다.


바다쪽으로 죽뻗은 말무리반도 앞으로 해금강의 현종암 복선암 부처바위 사공바위 등이 시원히 펼쳐져 있다.


앞으로는 '감호'라는 호수가 있다는데 뚜렷하지는 않다.


감호는 봉래 양사언이 '그대 어이 이 고장에 자리잡았나/내 답하리 천하명승 이보다 못하여라/'고 노래했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곳.


감호는 또 '나무꾼과 선녀'의 전설이 어려있는 곳이라고 한다.


그 앞에는 한국전쟁 이전 양양~원산을 이었던 동해북부선 철도가 끊긴 채로 분단의 아픔을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길은 분단을 너머 마침내 이어지고야 말 일이다.


북측의 금강산 관광특구지정 소식에 이어 금강산 육로관광을 위한 임시도로 및 철길연결 작업이 활기를 띠고 있지 않은가.


흙먼지를 일으키며 줄을 잇는 대형 트럭들의 엔진소리가 우렁차다.


"길은 저쪽으로 연결될 것"이라며 가리키는 초병의 손 끝에도 '통일의 희망'이 묻어 있다.


발길을 돌려 화진포해수욕장을 향한다.


공식 해수욕장으로는 동해안에서 가장 북쪽에 자리잡은 해수욕장이다.


TV드라마 '가을동화'의 촬영지로 더욱 유명해진 곳으로 젊은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바로 뒤쪽 동해안 최대의 석호 화진포호는 철새들로 가득하다.


바다를 향해 오른편 동산 솔숲에는 이승만.김일성, 이기붕 등 옛 실력자들의 별장이 안보전시관으로 남아 있다.


활처럼 휘어 5리가 넘게 뻗은 광활한 백사장에 앉아 겨울바다를 느껴본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를 하며 깔깔대는 한 부자의 모습이 정겹다.


멀리 두 남녀의 윤곽이 차츰 뚜렷해진다.


드라마의 한 장면을 되새기는 듯 여자의 어깨 위로 남자의 팔이 올라간다.


잠시 앉아 수평선 너머로 시선을 둔다.


비스듬히 어깨를 기댄 뒷모습이 사랑스럽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아직 현존하는 분단의 아픔은 더이상 찾을수 없다.


고성=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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