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카해협 '크루즈 여행'] 드넓은 바다로 떠나는 '작은 천국'

"한 2~3천명이 잘 어울려 사는 작은 나라를 상상해 본적이 있나? 바로 이 배를 떠올리면 될거야."

호주 남서부의 도시 퍼스에서 왔다는 한 할머니의 비유가 절묘했다.

남편을 먼저 보낸 뒤 이리저리 홀로 여행하는 재미에 산다는 할머니는 말라카해협 항로를 오가는 크루즈 수퍼스타 버고를 그렇게 정의했다.

할머니의 설명이 이어졌다.

"아마 승객만 2천여명이 탄다고 하지? 축구장 길이의 두배가 조금 넘고, 너비는 절반쯤인 13층 높이의 이 배의 공간을 아주 작은 나라로 보자구. 그것도 다툼없이 어울려 사는 평화로운 나라말이지. 피부색과 쓰는 말은 다르지만 모두가 여유로워. 눈에 띄지 않는 선장의 섬세한 뱃길안내와 승무원의 보살핌 속에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젊은 애들도 심심해 하지는 않는 것 같아. 놀거리가 많거든. 나로서도 함포고복(含哺鼓腹)이 따로 없지."


여행이라면 도가 튼 듯한 할머니의 말 대로 수퍼스타 버고는 그야말로 바다를 떠다니는 초미니 다민족 국가.

일주일에 필요한 것은 쌀 4t, 밀가루 2t, 쇠고기 3t, 닭고기 5t, 감자 3t, 달걀 3만5천개, 생수 2만병 등이 전부지만 모두의 얼굴에 넉넉한 웃음 가득한 그런 곳이 아닌가.

즐거운 상상에 젖어 배정된 캐빈(선실)으로 들어섰다.

바깥은 물기 머금은 잔잔한 바람 조금, 기온은 섭씨 30도.

선내는 한기를 느낄 정도로 냉방이 잘돼 있다.

침대위에 가지런히 놓인 내비게이터를 살폈다.

일출과 일몰시간을 포함, 크루즈여행을 즐기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담긴 일지다.

우선 몸을 풀기 위한 골프연습.

액티비티센터에서 드라이버와 공을 빌려 13층 갑판위에 올랐다.

반바지 차림에 웃통을 벗고 하는 스윙연습의 즐거움이 남달랐다.

반대편 농구연습장에는 어른들을 따라온 청소년들이 씩씩대며 농구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배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오후의 햇살 아래 싱가포르 크루즈센터를 나서 본격적으로 바닷물을 가르기 시작한 버고의 5만4천4백마력 거친 힘이 어디로 흡수되는지 움직임 조차 느낄수 없다.

스윙연습으로 달아오른 열기를 식히기 위해서는 수영이 최고.

피부색과 눈매가 각기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자쿠지풀과 수영장을 오가며 땀을 식혔다.

배가 출출해졌다.

12층 뒷쪽 무료 뷔페식당에서 중식요리를 담아 바깥 식탁에 앉았다.

아랫쪽에 마련된 어린이전용풀은 아직 개구장이들로 가득 차 있다.

그 아이들이 깔깔대는 소리와 오른편 인도네시아쪽 하늘을 붉게 물들인 낙조를 보며 드는 저녁식사의 맛이란...

이튿날 오전 첫 기항지인 말레이시아 랑카위섬.

크루즈여행의 맛을 배가시키는 기항지관광길에 올랐다.

6가지 일정중 아일랜드호핑투어(65싱가포르달러)를 택했다.

모터보트를 타고 '임신한 처녀의 섬'으로 알려진 타식 다양 번팅섬을 찾았다.

분화구처럼 생긴 섬 중앙에 민물호수가 형성된 신비의 섬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즐기는 민물수영, 메기처럼 생긴 물고기가 해주는 발마사지, 오리보트에 바나나보트까지 즐길수 있다.

다음은 풀라우 베라 바사섬.

산호모래 사장이 유난히 하얗고 조용해 그냥 눌러앉고 싶은 이 섬은 패러세일링으로 즐거움을 더해주었다.

다시 버고로 돌아와 나이트타임 계획을 따랐다.

한편에선 빙고게임에 열중하고, 헬스센터에서는 강사들의 구호에 맞춰 몸을 만드는 사람도 있었다.

5백명을 수용하는 대형극장의 쇼는 어제와 달랐다.

주야장천 카지노게임에 몰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을아래 커피 한잔을 놓고 사랑을 속삭이는 이들도 많았다.

전자오락실은 아이들로 꽉찼고, '최악의 음치선발' 등 다양한 이벤트 장소를 향하는 사람들의 발길도 바빠 보였다.

다음날 기항지는 태국의 푸켓.

오전 8시부터 기항지관광길에 나섰다.

코끼리타보기, 알카자쇼, 타이마사지체험 등 8가지 관광일정중 제일 비싼(1백40싱가포르달러) 바다동굴 카누체험을 택했다.

'태국의 계림'이란 말이 어울리는 팡나만 깊숙한 섬을 돌아다니며 카야킹을 해보는 것이다.

고무카약에 노젓는 안내원을 포함, 3명이 타는데 정말 스릴만점이었다.

몸을 완전히 눕혀야 들어갈수 있는 동굴 너머 천국처럼 펼쳐지는 섬안의 풍경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싱가포르 크루즈센터로 돌아가는 시간.

해넘이와 해돋이 그리고 또 한번의 해넘이가 기다리는 오랜 회항길이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기항지관광과 선내 이벤트에 대한 강한 인상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쉴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내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싱가포르=김재일 기자 kji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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