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잘 싸웠다. 비록 '전차군단' 독일을 격침시키지 못한게 아쉽지만 4강에 오른 것 자체만으로도 세계를 놀라게 한 대사건이었다. 독하다 싶을 정도로 상대를 압박하는 끈질김과 강철 같은 체력, 폭발적인 스피드를 앞세운 측면 돌파는 한국을 당당히 세계 축구계의 '톱 클래스'에 올려 놓는 원동력이 됐다. 세계 축구 무대의 변방에 머물렀던 한국은 이제 누구도 무시 못하는 강팀으로 변했다. 이 점이 우리팀이 이번 월드컵에서 얻은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한국 축구는 그동안 아시아를 호령하기는 했지만 세계 무대에 나가서는 주눅든 모습만 보여줬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역대 월드컵 성적은 14전4무10패. '0-9', '0-7', 그리고 '0-5'까지. 축구에서는 좀처럼 나오기 힘든 점수를 상대방에게 헌납해 왔다. 그러나 한국 축구는 이제 세계 정상급 팀들이 무서워 할 정도로 실력이 급성장했다. 월드컵 도전 48년째인 2002년. 우리는 안방에서 한국 축구의 달라진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특히 공격수와 미드필더, 수비수를 가리지 않고 경기가 끝날 때까지 그라운드 전역을 휘젓는 체력은 상대 팀이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한국 축구가 괄목할 만한 발전을 거둔 데에는 거스 히딩크 감독의 역할이 결정적이다. 그는 학연과 지연에 관계없이 능력 있는 선수 중심으로 팀을 운영했다. 잔기술만 있고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선수는 대표팀에서 과감히 퇴출시켰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체력훈련, 즉 파워 프로그램을 도입한 것이 한국 축구를 한 단계 '레벌업'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이번 대회 선전으로 한국의 FIFA 랭킹은 수직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5월 현재 40위이지만 월드컵이 끝나면 10위권으로 껑충 뛰어오를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상한다. 홍성원 기자 animu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