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는 없다." 지금으로부터 꼭 8년전. 94미국월드컵본선 조별리그 마지막 3차전이었다. 스페인 볼리비아와 두번이나 비긴 한국은 첫승에 목말라있었다. 상대는 세계 최고의 스피드와 체력을 자랑하는 '전차 군단' 독일. 필승의 투지와 정신력으로 똘똘 뭉친 한국은 전차군단에 육탄으로 돌격하는 저돌적인 공격축구를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러나 결과는 2-3 분패. 조별리그 탈락이었다. 그리고 8년이 흘렀다. 태극전사 '3인방'이 당시의 빚을 갚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23인의 태극전사중 8년 전 독일과의 경기에 출전했던 선수는 골키퍼 이운재(수원)와 황선홍(가시와 레이솔),홍명보(포항)등 3명. 당시 2무승부를 기록중이던 한국은 독일과의 최종전에서 전반 세 골을 내준 뒤 후반 추격전을 폈으나 두 골을 넣는데 그쳤다. 결국 같은 날 볼리비아를 꺾은 스페인에 밀려 조 3위가 되며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뼈아픈 기억이 있다. 그러나 이날 경기에서 이운재와 홍명보 황선홍은 전대회 우승팀인 독일을 상대로 후반 추격전을 펼쳐 두 골을 따라붙는 드라마를 연출해냈다. 0-3으로 뒤진 후반전. 대표팀의 막내였던 이운재에게 당시 주전 골키퍼 최인영대신 골문을 맡으라는 감독의 지시가 떨어졌다. 그는 위협적인 독일의 공격을 무실점으로 틀어막고 공격수들의 득점기회를 만들어내는 맹활약을 펼쳤다. 이날 추격골을 터뜨린 황선홍도 사실 독일전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그의 자신감은 91년부터 시작한 2년여의 독일분데스리가 경험에서 비롯 됐다. '황색 폭격기'란 애칭으로 그라운드를 휘저으며 22골이나 뽑아낸 그의 골감각은 후반 7분에 한꺼번에 폭발했다. 박정배가 중앙선 부근에서 패스한 볼을 왼발로 컨트롤한 뒤 오른발로 골키퍼 일그너를 넘기는 절묘한 골을 터뜨린 것. 이번 독일전에 임하는 그의 자신감이 남다른 이유다. 홍명보 역시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겠지만 기회가 오면 중거리포를 아끼지 않겠다"며 자신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는 당시 플레이메이커로서 후반 추격을 진두지휘한 것은 물론 득점까지 하는 빼어난 플레이를 펼쳤다. 후반 18분. 틈틈이 독일진영으로 깊숙이 침투하며 기회를 엿보던 그가 질주하기 시작했다. 독일 수비수 콜러가 헤딩으로 걷어낸 볼을 잡아 마테우스를 제친 뒤 강력한 오른발 중거리 슛을 날렸다. 추격의 기세에 불을 붙인 장쾌한 추가골이었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