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꼬박새워 월드컵을 본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감격, 이 흥분을 어떻게 가라앉힐지 모르겠다" "아, 대한민국이 이렇게 훌륭한 나라인가" "삼바축구에 그동안 주눅들었으나 이제는 브라질도 부럽지 않다" "이민 역사 40여년만에 우리는 드디어 해냈다."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페루, 과테말라 등 중남미의 어느 지역을 가릴 것없이 한국 교민들이 터잡은 나라의 교민들은 감격에 겨워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홍명보의 골이 네트를 가르는 순간 교민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서로 얼싸안고 등을 두드리며 수십년 쌓였던 `한'을 풀었다. 가족과 함께 단체응원장을 찾았던 노인들의 눈가엔 어느새 감격의 눈물이 샘솟았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한국의 젊은 녀석들'이 너무 잘해준 덕에 고난했던 이민생활의 애환이 잊혀졌고, 가슴이 뻥뚫린 느낌이다. 젊은이들은 어느새 `빵빵쇼'에 나섰다. 중남미 축구팬들은 자국팀이 주요 국제경기에서 이겼을 때는 승용차혼을 짧게 5번씩 연속적으로 울리며 승리의 공감대를 확산시킨다. 심야건 대낮이건 상관없다. 동틀녘이지만 주말을 맞아 한 잔을 걸치고 오가던 현지인들은 `꼬레아의 승리'에 박수를 치며 동참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 역시 `비바 꼬레아(한국 만세)'였다. 멕시코시티 중심가의 피에스타 아메리카나 호텔, 브라질의 루스공원, 아르헨티나의 교민회관 등에 모인 교민들은 모두가 한 마음, 한 표정이었다. 지구 저쪽편에 위치해 한국과는 -12∼14시간의 시차가 나지만 교민들의 마음은 일치했다. 현지시각으로 21일밤부터 멕시코시티의 피에스타 아메리카나에 모인 교민 1천여명은 이미 `붉은 악마' 복장을 한 채 응원연습부터 들어갔다. 텔레비사 등 현지 TV방송과 밀레니오 등 주요 일간지의 취재.사진기자들이 교민들의 응원열기에 관해 취재열기에 들어가면서 서툰 모습을 보여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한국 선수들의 피로한 듯한 몸이 제대로 풀리지 않으면서 전.후반 90분과 연장전.후반 30분 등 120분의 `감동의 드라마'가 무승부로 끝나고 페널킥에 들어가자 모두들 손에 땀을 쥐었다. 한 골 한 골...우리 선수들이 이케르 카시야스 골키퍼의 손이 미치기 어려울 정도의 스피드와 정확성으로 그물을 가를 때마다 태극물결의 출렁거림과 환호가 이어졌다. 이윤재가 호아킨 산체스의 킥을 펀치로 쳐내고 홍명보의 볼이 골네트 안쪽에 처박히는 순간 호텔 연회장은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변했다. 브라질 상업도시 상파울루의 루스공원도 마찬가지. 야외에 설치된 대형 TV로 페널킥을 지켜보던 교민들은 공원이 주저앉을 정도로 쿵쿵 뛰며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다. 축구광인 현지인들도 한국의 승리를 반가와하며 축배를 들었다. 교민상가가 밀집한 봉헤치로 지역에서는 곳곳에서 `대∼한민국'이 외침이 들렸고, 뜨거운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교민들은 부둥켜 안은 채 우는 모습도 보였다. 거리를 지나는 차량은 교민이건 현지인이건 승리의 경적을 울려대기가 바빴고,차량마다 매달린 태극기는 새벽바람을 가르며 힘차게 나부꼈다. 경제난에 찌든 아르헨티나 교민들도 이 순간 만큼은 고단한 삶에서 해방됐다.자신들이 거주하는 아르헨티나가 국운을 반영하듯 조별 예선에서 탈락, 우울하기도 했지만 역시 태극전사들의 승리는 모두의 심금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4강 진출의 감동과 감격을 예상했던 교민단체는 자동차 축하행진을 미리 준비,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아베자네다를 출발, 가장 넓은 도로인 7월9일 거리를 거쳐한인촌까지 경적을 울리며 시가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태극기와 더불어 아르헨티나기도 흔들면서 그동안 경제난에 따른 강.절도 사건으로 얼룩졌던 한인사회의 결속과 현지인 사회와의 유대강화를 상징하며 거리를 누볐다. 가족.친지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봤던 멕시코 교민 김주현(42.사업)씨는 "홍명보의 골이 성공하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며 "월드컵 축구 시청으로 밤을 꼬박새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중남미 교민 모두가 `잠 못이룬 밤'이었을 것"이라고말했다. (멕시코시티=연합뉴스) 성기준특파원 bigpe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