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30분을 포함, 120분간 혈투를 치르고도 0-0 승부를 가리지 못한 한국과 스페인은 운명의 승부차기에 들어갔다. 스페인은 엿새 전 아일랜드와 이미 승부차기 대결을 벌여 본 경험이 있고 한국은 월드컵 무대에서 처음 맞는 승부차기인 데다 앞선 경기에서 이을용과 안정환이페널티킥을 실패, 심적 부담이 큰 상태. 광주월드컵경기장을 가득 메운 4만2천여 관중이나 주말 집과 거리에서 화면을 통해 경기 장면을 지켜보던 국민은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이 먼저 차게 됐고 1번 키커는 황선홍. 황선홍이 오른쪽으로 찬 오른발 슈팅은 스페인 골키퍼 카시야스에게 방향이 읽혔지만 워낙 강하게 찬 까닭에 몸을 날린 카시야스의 겨드랑이를 스치고도 골라인을 통과했다. 스페인의 1번 키커로 나선 주장 이에로도 여유있게 골을 성공시켰다. 한국의 2번 키커는 아직도 소년 티를 벗지 못한 박지성. 하지만 나이만 어렸을뿐 박지성은 이미 부쩍 커버린 `거인'이었다. 박지성은 카시야스를 완벽하게 속이고 오른쪽으로 오른발 감아차기 슈팅을 날려 그물을 흔들었다. 스페인의 2번 키커 바라하가 왼쪽으로 오른발 슛을 날렸지만 이운재는 반대쪽으로 몸을 날려 승부차기 스코어는 2-2. 비록 이탈리아전에서 극적 동점골을 성공시켰지만 번번이 골찬스를 날려버려 팬들을 실망시켰던 설기현이 3번 키커로 나서자 경기장에는 긴장이 감돌았다. 그러나 설기현도 카시야스를 속이며 오른쪽으로 강하게 차 넣었고 이어진 스페인 차례에서는 사비가 오른쪽 골대 상단 모서리에 꽂히는 `대포알' 슛으로 3-3으로쫓아왔다. 한국의 4번 키커는 안정환.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 페널티킥을 실패했던 안정환이지만 그 실수에서 교훈을 얻은 듯 이번에는 정면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오른발로 차넣었다. 다음은 운명이 갈린 스페인의 4번째 키커. 위력적인 돌파력으로 한국 측면을 유린했던 호아킨이 등장했지만 그의 표정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훔쳐 볼 수 있었다. 호아킨은 도움닫기를 하던 중 골키퍼를 속이려는 듯 한 템포 주춤한 뒤 오른발로 공을 찼지만 방향을 읽어낸 이운재의 손에 걸려들었다. 한국이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한국 대표팀의 주장 홍명보가 5번 키커로 나섰다. 홍명보는 페널티킥 지점에 공을 올려놓은 뒤 여유있는 표정으로 뒷걸음쳤고 카시야스를 한 번 쳐다본 뒤 도움닫기를 시작했다. 4만2천여 관중이 모인 광주월드컵경기장에는 짧은, 아주 짧은 정적이 흘렀다. 홍명보가 골대 오른쪽 상단을 향해 날린 슈팅이 그물을 때리자 숨죽이고 지켜보던 관중들은 태초의 `빅뱅'를 무색케할 함성을 터뜨리며 얼싸안고 "대~한민국"을 연호했다. (광주=연합뉴스) econom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