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선홍과 페르난도 이에로. 한국과 스페인을 대표하는 선수다.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둘 다 대표팀의 정신적 지주다. 황선홍은 A매치 1백경기에 빛나는 '한국대표중의 대표'. 이에로는 스페인의 '영원한 주장'이다. 이번 월드컵은 두 선수에게 조국을 위해 뛰는 마지막 경기다. 대회가 끝난 뒤 대표팀 유니폼을 벗겠다고 두 선수 모두 공식 선언했다. 두 노장은 자신과 조국의 명예를 위해 모든 열정을 쏟고 떠나겠다는 결의를 내비쳤다. 흥미로운 것은 황선홍은 창(스트라이커)이고,이에로는 방패(수비수)다. 어차피 22일이 지나면 두 팀중 한 팀은 탈락하게 된다. 그동안 국가대표로 쌓아온 명성을 지키고,조국에 마지막 봉사를 하겠다는 황선홍과 이에로의 충돌은 그야말로 '축구선수로서의 목숨'을 건 싸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두 선수의 대결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90년 이탈리아 월드컵때 조별리그 한국-스페인전에서 두 선수 모두 벤치를 지켜 마주치지는 못했다. 94년 미국월드컵 조별리그 첫 경기인 한국-스페인전에서 첫 대면을 했으나 양팀이 2-2로 비겨 우열을 가리지 못했다.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예선 조가 달랐다. 월드컵 본선 8강전에서 만나는 이번은 무승부가 없다. 마지막 승부인 동시에 진검승부인 셈이다. 황선홍은 월드컵 개막 직전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며 "마지막 무대인 이번 월드컵을 화려하게 장식하겠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그의 용기를 극찬했다. 그의 결의는 그라운드에서 입증됐다. 한국에 첫승리를 안긴 첫 골은 그의 왼발에서 나왔다. 미국전에서는 찢겨진 이마에서 흐르는 피를 붕대로 틀어막고 싸웠다.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는 후반 교체멤버로 나와 굵은 땀방울을 비오듯 흘렸다. 이에로는 한국전을 앞둔 지난 18일 울산에서 '월드컵 후 대표팀 은퇴'를 공식 선언했다. 이에로는 "A매치 참가횟수가 88회인데 이 숫자를 91로 늘린 뒤 대표팀 유니폼을 벗겠다"고 말했다. 스페인을 이번 월드컵 결승까지 끌고 가겠다는 결의를 밝힌 것이다. 축구 명가 스페인을 월드컵 우승으로 이끌고 대표팀을 떠나겠다는 이에로와 '태극불패'의 신화를 만들고 명예롭게 대표팀 유니폼을 벗겠다는 황선홍. 두 노장 선수 가운데 누가 그 꿈을 이룰 것인지 주목된다. 조주현 기자 forest@hankyung.com